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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말한 날

jealousy

2024. 12. 05. 목요일

조회수 12

저번주부터 계속 퇴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스스로 제대로된 상태가 아니라는 생각이들고 자꾸만 멍해지고 실수하고 둔해지는 내가 낯설다.
퇴사를 마음에 담았지만 입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퇴사를 마음 먹은 것 만큼 팀장님을 따로 불러내어 얘기를 건낸다는 것도 나에게는 아주 큰일이다. 아니 그냥 팀장님은 처음부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잠깐 불러내어 얘기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가 보다.
고민하던 와중에 팀장님이 나를 먼저 부르셨다. 괜시리 찔렸다. 왜 부르신 걸까 최근 내 상태가 이상한걸 지적하시려는 걸까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저번주에 진행한 iot프로젝트에 대해 물어보셨다. 실제 기기를 가지고 싹 다시 만들어야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편이 진단자도 가이드도 훨씬 성장할 것 같았다.
근데 팀장님이 그걸 내가 해보면 어떠냐고 하셨다. 당황스러웠다. 일부러 누가 진단하던 다시 만드는게 나을 거라고 했는데.. 이렇게 화살이 돌아왔다. 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퇴사를 말하려면 지금이다..!
팀장님에게 사실 내년 1월까지만 일할까 생각중이라고 말씀드리니 퇴사를 생각하고 있을줄은 몰랐다고 하셨다. 근데 요즘 이상한건 눈치 챘다고 하셨다. 풍기는 냄새가 달라졌다며
눈치 빠른 그라면 이미 알고 있을 줄 알았다. 팀장님 또한 요사이 나에게 오늘은 말 좀 했냐며 물어대셨기 때문에.
나는 요즘의 이상한 나의 상태와 의도하지 않았지만 굳이 대화에 끼고싶지 않은 순간들을 설명했다.
원래도 덤벙거렸지만 점점 실수가 늘어가고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하는 순간들,,
그로인해 오늘도 몇번이나 심장을 졸이고 이유없이 둥광거렸는지 모른다.

입사 후 나는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도 못하고 눈에 띄는 기술을 가지지도, 팀장님을 잘 따르지도, 그의 피드백에 적극적으로 응하지도 않았다. 안했는지 못했는지는 잘 모른다 나도.
그리고 팀원들과도 화기애애하게 잘 지냈는지 잘 모르겠다. 아니 사실 잘 못지낸것 같다. 눈에 띄게 불화가 있거나 척을 진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잔잔하게 내가 무언가 얘기하면 분위기가 싸해지고, 책임님이외에는 딱히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없지 않나 싶은 것이다.

지금의 나는 자존감도 자신감도 매우 떨어져있다. 솔직히 해킹기술로 자신감을 되찾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10년뒤에도 내가 정보보안을 하고 있을까 하면 단연코 아니오였다.

팀장님의 다정하게 잘 챙겨주는 성격은 좋지만 과하게 친목을 다지거나 다같이 다니는 분위기는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 3년동안 잘 녹아들 수 있을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어쩌면 나보다 더 빨리 눈치챈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만 알아채는데 3년이 걸린 걸수도 있다.
나는 왜 좀 더 빨리 자신을 돌보지 못했을까. 이번주에는 점심시간에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다.
좀 복잡미묘한 감정인데 정확히 뭘 생각하다가 어떤 기분을 느껴서 눈물이 나올뻔 했는지 모르겠다..그냥 기억이 안난다. 다음에는 메모에 적어두던지 해야겠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함에 감정이 북받친걸수도 있겠다.

다시 말을 이어가자면 팀장님은 내 얘기를 듣더니 여러 얘기를 꺼내며 나를 잡기 시작하셨다.
우울증인척 증거를 만들 수 있다면 한달정도 병가를 내볼 수 있을 것 같다 라던지, 그만두고 뭔가 대책이 있냐고 하시며 없다면 차라리 다른 팀으로 가던지 부서이동을 생각해 보라고.
다음주 부터 시작하는 iot 프로젝트가 있는데 적임자가 너라고 그래서 이걸 맡기려고 불렀다고 하셨다.
월급이 부족하면 상의해보겠다고도 하셨다. 글로 줄줄 적어보니 팀장님이 꽤나 절박해 보인다.
나올 수 있는 카드는 다 나온것 같다..팀장님은 나를 팀내의 연구원으로 써보고 싶었다고 하셨다.
틀 없이 자유롭게 해줄 때 빛을 발하는게 아닐까 했다며, 첫 스터디 발표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고. 아무도 안 밟은 흰눈에 혼자 발자국을 내는 사람 같았다고 한다.

나에게 이렇게까지 관심을 주고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솔직히 가족보다 팀장님이 나를 더 잘 아시는 걸지도 모른다.
오늘 언니가 엄마앞에서 퇴사 얘기를해서 엄마도 나의 퇴사 이슈를 알게되었는데 엄마는 그냥 내가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 줄 아셨단다. 뭐 내가 아무말도 안했으니 그럴수밖에..
엄마는 다들 이직처를 구하고 그만둔다며, 그냥 일을 그만두고 싶어서 그만두면 나중에 힘든건 너라면서 취업 못하고 1년 2년 지나면 현타올거라고 하셨다. 엄마는 무언가 말을 하면 다들 힘들어 다들 그래식의 대답을 내놓고는 한다.

사실 나는 조금만 더 심각했으면 우울증 약을 먹어야하는 수준이고 무기력증에 번아웃을 달고 있다. 스스로는 벗어나기 힘들만큼 빠져있다. 이것 만큼은 정신과 의사가 말해줬으니 확실하겠지.
주말마다 심리상담을 받은지 2회가 되었고 그 2회만으로도 나는 내가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외면한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엄마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니 그냥 일하기 싫어서 그만두려는 철부지 딸로 보이겠지.
사실 이것도 엄마에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처음에 정신건강의학과도 가벼운 생각으로 갔고 심리상담도 조금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을까 싶었다. 딱 그정도의 생각으로 갔다.
하지만 하나씩 모이니 이걸 가족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꽤나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까..

지금의 직장이 3년간 나에게 득이었는지 독이었는지 모르겠다. 내일 팀장님께 대답해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큰 결정에 흔들리기는 또 처음이다. 내 마음이 이렇게 약해져있었나. 아니면 각오가 부족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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