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동차 긁힘사고

지호 담임쌤과 상담을 기분좋게 마무리하고 속눈썹 문신을 하러 출발했다.
날씨가 이틀사이 너무 따뜻해져 옷차림도 가볍고 좋은 기분으로 들떠 있었다.
속눈썹 레이저시술을 마치고 남편에게 늘 지루하게 같은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 미안해서
화사한 봄을 핑계삼아 티셔츠도 몇장 사고 주차장을 빠져 나오는 길이었다.

기분도 좋았고 쇼핑도 즐거웠고 점심식사를 놓친터라 서둘러 나오다가 주차장 기둥에 자동차를 세게 긁고 지나쳤다. 요란한 굉음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바보바보...미쳤나...무슨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많은 날들 고민을 거듭하며 힘든 결정을 해서 남편이 산 자동차인데 화가 나고 속상할 남편이 생각나 멘붕이었다.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말하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다. 이번 일로 잘 지내왔던 우리 관계가 다툼이나 불편해 질까봐 불안했다.

최근 노력하고 다정하게 대하는 남편의 모습이 고마웠고, 엄마아빠의 이런 모습에 편안해 할 지호를 떠올리며 안정감이 들었었다. 남편을 위해 외모를 관리해 볼 생각으로 속눈썹도 쇼핑도 했던건데...
이번 일로 다툼이 생길까 걱정이 앞섰다. 차라리 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다. 그때 지호가 떠올랐다.
어떠한 일도 숨김이나 거짓없이 부모에게 알리고 상의하자고 했던 나였다. 그런 엄마가 속이고 알리지 않는다는건 부모로서 부끄러웠다. 지호가 우리를 보고 삶의 대응을 배울텐데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혼날까봐 무서워 말을 못하거나 혼자 해결하려고 노심초사하거나 나쁜 결정을 하게 되는 부분이 이해되었다. 솔직하게 알리고 함께 상의하는 모습을 보이기로 결심하고 용기를 냈다.

사고소식을 접한 남편은 알아서 처리하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그러나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화도 나고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미안했다. 내 부주의가 불러온 큰 경제적 손실은 돌이킬 수 없고 한심스러웠다. 잘못에 대해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명백한 내 실수니까. 앞으로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결심은 당연하고, 마음 상한 남편을 신경써서 풀어주려고 노력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과정중 남편의 냉담함에 서운한 감정이 들게 되더라도 수용할 것이다. 잘못을 원망으로 돌리지 않을 것이며 풀릴 때까지 묵묵히 받아들일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도 소용없을 것 같아 못했다. 그저 식사를 챙기고 간식도 챙기고 이런 저런 말들을 건네고 평소처럼 일상을 처리했다. 집안일을 정리하고 운동도 다녀왔다. 목돈이 생기면 남편만의 새차를 선물하겠다. 카쉐어는 신경쓰이는 부분이 많고 불편하긴 하다.
조금 지나면 남편생일이다. 차수리비가 백만원 정도인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 돈을 남편에게 선물하겠다.
수리를 하든 남편이 사용하든 선택에 맡기겠다.

지호가 저녁에 나를 꼬옥 안아주며 "엄마, 괜찮아~"라고 말해주었다. 엄마를 위로하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딸이 너무 고맙고 뭉클하다. 어쩜 그렇게 따뜻한 사람으로 잘 컸는지 대견하다.
남편이 그렇게 말해주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바라지 말자.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잖니. 표현을 못할 뿐 마음이 없는 사람이 아님을 안다. 현명하고 다정한 딸과 선비같은 남편이 있어 나는 괜찮다. 조금더 삶에 대한 자세를 진중하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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