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1. 19.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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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 말을 할 수 있게 된 나이부터 지금까지
"사과해", "사과해줄래?"
같은 말들을 썼으면서 정작 사과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딱히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친구랑 싸울 때 친구가 사과의 정의를 언급한 적도 있었다. 나 스스로 상대방에게 어떤 사과를 원하는 지 내가 원하는 사과의 방식이 올바른 지, 싸우던 상황의 내 자존심만 생각해 친구의 질문에 대답을 대충 얼버무렸던 것 같다. 난 스스로 말을 할 수 있게 된 나이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얼버무렸었다.
그래서 이제 와 친구의 질문에 깊게 고민해보니 사과는 정의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사과는 내적으로 나 스스로와도 싸우고 그 안에서 여러 과정들이 오고가야 그 과정이 내 진심들을 우러나오게 하는 것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조금 투박했을 지도 모를 과거들을 되새김질하면서 사과의 과정을 알아바야겠다.
첫번째, 내가 생각한 14살은 잠깐 쉴 여유도 없이 언성 높여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그런 나이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13살이 더 아파했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많은 갈등이 있었던 13살에도 사과의 정의를 애써 얼버무리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아파했던 것 같다. 아직도 선명한 갈등 속에서 갈등이 이유는 우리 나이만큼이나 유치했고, 우린 나이만큼이나 유치하게 싸웠다. 이런 부분들을 보면 진정한 사과의 과정 중 하나는 '인정'인 것 같다. 우린 방금 딱 우리나이만큼 싸웠어. 서로 아직 어리다고 인정하는 하나의 과정일 지도 모르겠다.
내가 띄어쓰기를 좀 익혔을 때쯤 언니가 나한테 말해줬다. 인간은 끝없이 배워야 한다. 나이가 90이 넘어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지언정, 그 때가 되어서야 진정 배울 수 있는 게 있다. 혼자 살아가는 법, 지금까지 열심히 버텨왔던 추억들을 다 보내줄 준비를 하는 법. 그 과정들을 거쳐야 정들었을 지 모를 이 세상에서 떠날 준비가 된 것이다. 사과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를 깨우쳐야 하며, 나 스스로를 좀 공부해보아야 한다. '내가 뭘 잘못했지?' 하며 혹시나 내가 이성을 잃어 상대방에게 평생 기억에 남을 상처를 휙 그어놓은 것은 아닐 지, 혹시나 그랬다면 내가 어느 부분에서 이성을 잃은 것인 지 나 스스로를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진정한 사과의 과정 중 또 하나는 '배움'인 것 같다.
내가 사과할 때에 기억을 되살려보면 난 항상 자존심 때문에 안 늦춰도 될 시간을 늦추고, 버렸던 것 같다.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가 마치 6살 때 해안가에서 주워온 고운 돌인 것처럼 그렇게 버리지 않았다. 이제 해안가에서는 돌을 안 줍고 그냥 지나쳐올 수 있는 나이가 됐지. 하면서도 난 항상 엄마의 타이르는 소리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항상 버리지 않고 있다가 엄청 뒤늦게 버렸던 것 같다. 그 어린 나이에도 그 돌을 버려야한다는 걸 아는데 그게 그렇게 버리기 싫었다. 그 돌을 버리면서 난 그 돌이 쓸모없다는 걸 인정하고, 그 돌로 나 스스로 갈등을 겪으면서 배웠고, 그 과정이 있었기에 돌을 버리고 엄마한테 칭찬을 받고 기뻐할 수 있었다.
이 경우들을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건, 사과 또한 내 잘못을 인정하고 자존심을 버리면 진정한 사과를 하게되고 그 과정으로써 우린 배우고 성장하게 된다. 진정한 사과는 그 성장통을 겪으면서 나오는 나의 진심을 얘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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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1. 20. 2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