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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D.or

2026. 02. 27.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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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경상도의 작은 마을은 사계절이 뚜렷했다. 봄이면 들판에 유채꽃이 노랗게 물들고, 여름이면 논마다 푸른 벼가 바람에 출렁였다. 가을에는 황금빛 곡식이 고개를 숙였고, 겨울이면 흰 눈이 마을을 덮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나 군화 소리에 짓밟혔다.

김하정은 열 살 남짓한 아이였다. 그는 늘 들판에서 뛰놀고 싶었지만, 일본 순사들의 눈초리를 피해 숨어 다녀야 했다. 마을 어귀에는 일본군의 초소가 있었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숨을 죽였다. 어린 하정은 그 이유를 다 알지 못했지만, 어른들의 굳은 표정 속에서 무언가 잘못된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봄날, 마을에 일본 순사가 들이닥쳤다. 그들은 집집마다 들어가 쌀을 강제로 거두어 갔다. 어머니가 애써 모아둔 쌀독은 순식간에 비워졌고, 남은 것은 굶주림뿐이었다. 하정은 그날 밤,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며 “이 땅은 우리 것이어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그 말은 어린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학교에서도 자유는 없었다. 교실 벽에는 일본 국기가 걸려 있었고, 교사는 일본어로만 수업을 했다. 아이들은 억지로 일본 천황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야 했다. 하정은 그 노래를 따라 부르지 못했다. 그의 혀끝에는 언제나 한글이 맴돌았고, 마음속에는 태극기가 펄럭였다.

밤이 되면, 아버지는 등잔불 아래에서 몰래 한글을 가르쳐 주었다. “가, 갸, 거, 겨…” 하정은 작은 목소리로 따라 읽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글자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빼앗긴 세상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무기였다.

그러나 위험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어느 날, 일본 순사가 마을을 수색하다가 하정의 집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 놓인 한글 책을 발견한 그는 분노에 차서 책을 찢어버리고, 아버지를 끌고 나갔다. 하정은 그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떨었지만, 동시에 결심했다. “나는 절대 잊지 않겠다. 우리 글, 우리 말, 우리 땅을.”

들판에 봄꽃은 여전히 피었지만, 그 위를 지나가는 군화 소리는 꽃잎을 짓밟았다. 하정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 반드시 이 들판에 자유의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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