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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1

영인

2025. 11. 22. 토요일

조회수 12

3년 전 너무 유치하게 연이 끊겨버린 친구가 있다. 솔직히 꽤 좋아하던 친구였는데 그렇게 유치하고 허무한 이유로 연을 끊은 것이 실망스럽고 배신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무려 24살에 내 신발이 이상하다는 그 친구의 말에 공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SNS 저격 당하고 연 끊김;;) 그런데 그 친구의 블로그며 SNS에는 세상 철학적인척, 어른인척, '나는 사람을 책 보듯 본다.' 뭐 이딴 문구들을 적어놓은 게 가소로워서, 근데 또 배꼽냄새 마냥 궁금해서 음침하게도 종종 그 친구의 생각을 염탐하곤 했다. 그런데 딱 하나, 그 친구의 SNS에서 가소롭지 않았던 점이 있다면 매 계절을 느낀다는 그 친구의 철학. 사실 처음엔 개오글거린다고 생각했는데, 맞는 생각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항상 계절을 '수능 냄새', '넘치게 행복했던 생일 냄새' 등으로 기억하곤 했다. 계절을 느끼고 그걸 냄새로 표현하면서 나의 삶과 속도 같은 것들을 가늠했던 것이다.
세상은 사람들의 삶의 속도와 방향을 얘기할 때 나이로, 토익 점수로, 취업 시기로, 재산으로 생각하곤 한다. 가령 '누구는 벌써 20대에 1억을 모았다더라.'라던지 '누구네 자식은 나이가 40인데 장가가 아직이라더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인생에서의 부업에 불과하다. 인생의 본업은 '자기자신을 아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의식해서 계절을 느끼고 삶의 속도와 방향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지난 겨울에 알던 나랑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다른지, 다음 겨울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이번 겨울에 난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지금의 나는 어디까지 온 건지 같은 것들 말이다.
난 그동안 내가 되게 외로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운 나쁘게 감정적인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만나 감정적으로 학대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주변사람들이 날 미워한다고도 생각했다. 내 옆에서 내가 외롭지 않도록 도와줬던 사람들의 손길은 기억하지 못했다. 숲을 보지 못하고 불행한 나무만 지켜보느라 멍청하게 27살을 흘려보냈던 건 아닌가 싶다. 여전히 감정적인 사람들이 가족이라서 학대 당하고 있다는 생각도 갖고 있고, 사람들이 날 미워할 때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모두의 친절을 바라지 않는다. 타인의 말과 행동, 생각은 내가 내 얘기를 먼저 들어준 다음 받아들일지 말지 고민하면 된다. 의미없이 표출하는 타인의 생각 같은 건 어디까지나 부업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내 몸과 마음을 먼저 가꾸고 인생의 부업을 해야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게 지난 겨울과 올 겨울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다. 남은 올 겨울에도 숲을 보고 느끼는 생각들을 기록해 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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