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9. 16.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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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같은 일상의 무한 반복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매일 노력 중 이다.
쉴 틈 없이 정신없는 일상을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하면서 찾아온 번아웃은 주말을 쉰다고 해서, 일주일을 쉰다고 해서 쉽사리 해결될 수 없던 오랜 고질병이였다.
나는 사람들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긴 시간 동안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내 기억이 허락하는 유년 시절 부터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에 신경 쓰며 살아왔고
그들이 원하는 내 모습을 꾸며내 그 모습으로 지내왔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마음에 든다고 말 해야 했고, 거절 하고 싶었지만 거절 할 수 없었고, 부탁하는 상대에게 밉보일까 걱정하며 전전긍긍했다. 완벽한 일 처리를 위해서 과중한 업무도 스스로 도맡아 처리를 했고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지인들에게든 나는 '좋은 사람' 이어야 했다.
혹시라도 내가 내 캐릭터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오면 그 죄책감과 괴로움에 짓눌려야 했다.
남들에게 맞추며 살아가는 내 자신에게 익숙해진 상태였고, 나는 나 스스로를 바꿀 힘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나는 나를 바꿀 의지조차 상실한 상태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내가 놓치기 싫고 사랑 받고 싶던 상대에게는 기꺼이 나를 희생해서라도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그들이 힘들어 쉬고 싶을땐 언제든 기대어 쉴 수 있는 쉼터가 되기를 자처했고
내 시간과 내 노력 내 에너지를 모두 털어 그들에게 제공했다.
다음날 일어나서 허무하고 심신이 지친 상태가 찾아와도 난 그게 내 스스로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이 만족하고, 행복했다면 그걸로 됐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내가 업을 삼아 하고 있는 일을 하는 와중에도 이와 같은 상황은 끊임없이 반복 되었다.
20살 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친하게 지냈던 직장 동료였던 모 언니도 딱 나와 같은 유형이었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심한 상태의 상황이었다. 거절 이라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모든 허드레 업무를 자처했고, 쥐꼬리만큼 오르는 연봉 속에서도 불평 불만 없이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직장생활에 임했다. 일찍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언니는 3년전 지금의 형부를 만나 나와 같은 상황을 벗어나 새로운 삶, 행복한 삶을 선택했고
교묘하게 본인을 착취하는 직장 상사에게 빅엿을 날리고 퇴사했다.
그 언니의 퇴사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돌았다. 누구보다 성실했고 괜찮았던 직원이었기에
타 부서에서 조차 그 언니의 행방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때마다 상사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퇴사 이유에 대해 최대한 좋게 설명하느라 늘 진땀을 뺐다.
나 역시 그 언니의 괴로운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애인 하나 잘 만났다고 오랜 시간 몸 담은 직장을 뒤도 안 돌아보고 쿨하게 퇴사 할 일인가? 싶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언니의 결정은 그 언니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 이자,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만한
거대한 사건이었다.
단순히 이 모든 상황을 알고 누구보다 속상해 하고, 걱정하고, 언니를 사랑하는 형부에게
더는 답답한 모습과 속상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서 퇴사를 선택했을까?
아니다.
퇴사 직전 나와 간단하게 소주를 기울이는 자리에서 그 언니는 내게 말했다
더는 남의 비위를 맞추며 살고 싶지 않다고, 대가 없이 남들에게 나를 맞추는 삶을 오래 살다 보니
자기 스스로를 잃고 살았다며, 긴 시간 내가 이 직장에서 일하며 남은게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라고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며 고개 숙인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이다.
그 말에 동조하며 맞다. 나도 언니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기 때문에 언니가 어떤 마음일지, 어떤 감정으로
내게 이런 말을 하는지 모두 다 이해가 된다며 공감의 눈물을 흘리던 나는
그 언니가 퇴사 한지 몇 년이 흐를 때 까지 퇴사하지 못하고 그 직장 내에서 그 언니의 포지션이 되어
괴로워하며 일했다. 몇 년을 그렇게 괴로워하며 일하고 공황 장애를 얻고, 강박이 심해져서
그 강박이 결벽증으로 찾아오기도 했고, 스스로를 지나치게 검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을때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그 직장을 그만둔지 한 달이 넘었다.
처음엔 내 퇴사에 대해 어떻게든 말려보려고 노력했던 팀장도 이제는 지쳤는지, 아니면 기왕 내 연봉이면
더 어리고 싸게 먹히는 직원으로 새로 뽑으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나중엔 내 미래를 응원하는 척
나를 떠나 보내주었다.
영원히 내 업계에 몸 담으며 은퇴까지 잘 해 먹을거라고 생각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이걸 안 하면 뭘 해먹고 살지에 대해서도 정해 놓은 것도, 생각해본 것도 없다.
나는 큰 노력 없이 내 또래에 비해 괜찮은 연봉을 받고 있었고, 스케쥴도 탄력적으로 조절이 가능한
워라벨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게 편했고, 어려운 길은 선택하기 싫었다.
내 마음이 다치던지 말던지, 내가 태우다 태우다 못해 하얗게 재가 된 상태에서도 나는 스스로를 다그치고
어떻게든 내 에너지를 끌어올려 남들의 비위를 맞추고, 과중한 업무를 도맡아 했다.
가장 오랜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는 물론이고 내 지인들과 당시 만나던 연인에게도 난 그런 사람이었다.
열정 넘치고, 에너지 넘치고, 어떤 고민을 털어 놓아도 진지하고 확실하게 솔루션 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어떤 문제를 제기해도 바로바로 피드백이 되고, 수용이 되는 똑똑하고 일 머리 좋고, 센스 있는 사람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 이미지에 나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나를 구겨 넣으며 살아왔다.
진짜 내가 아니라 남들이 예뻐하고 좋아하는 내 모습인 내가 아닌 가상의 나를 구축하며 살아온거다.
그 모든 지침과 스트레스는 나 스스로에게 돌아왔다. 하루라도 스케쥴이 비는 날이 생기면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의미없는 릴스와 쇼핑 플랫폼을 들락거리며 내 공허함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억지 도파민을 만들어냈다. 나를 태워 번 돈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돈을 쓰는 아이러니함은
한동안 계속 된 것 같다. 끊어지지 않을 것 같던 그 사슬은 지금의 내 남자친구를 만나며 지난 시간을 비웃듯
한번에 끊어졌다. 이 사람이 속상해 하지 않는 모습, 이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랑스러운 내 모습을 위해
퇴사한게 아니다. 여러 우연과 시기가 겹쳤을 뿐이다.
연애를 시작하고 삼개월만에 나는 백수가 된 모습을 보여줬다
나는 나를 위해 이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 현실이 블랙코미디가 아니라는 듯 이 사람도 일주일에 단 하루
쉴 수 있던 직장을 조금의 미련도 없이 그만 두었다.
앞으로 내가 쓸 내 일기는 백수가 되어 고군분투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다채로운 백수의 삶을 써내려 가고 싶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 제 2의 인생을 살고 싶다
그동안의 낡고 지친 내 모습은 퇴사와 함께 전 직장에 두고 오고, 새로운 내가 되어 사는 멋진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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