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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약속' 22

애나🍬

2025. 04. 13. 일요일

조회수 33

에리엔은 능숙하게 미소 지으며 귀족 청년들에 질문에 대답하고, 그들과 적절한 거리의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선 어쩐지 무언가가 허전했다.
그 공허함의 이유를 자각한 순간, 에리엔의 눈빛이 흔들렸다.
라비안.
언제부터였을까.
ㅏ비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까까지 분명 구석에서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던 그였다.
그 눈빛은, 어떤 말보다 많은 것을 품고 있었다.
에리엔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어디에도 라비안은 없었다.“…실례하겠습니다.”
귀족 청년의 말을 반쯤 끊고, 에리엔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조용히 무도회장을 빠져나왔다.
황실 복도는 고요했다. 음악 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촛불은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에리엔은 자신의 드레스 끝을 손에 들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설마, 아직 거기 있을까…’
그녀는 발소리를 죽인 채, 정원 뒤편의 작은 연못 근처로 향했다.
거기는 라비안이 늘 혼자 시간을 보내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그가 있었다.
정말로 그곳에 있었다.
그는 연못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검은 망토가 바닥에 드리워져 있고, 한 손엔 자신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라비안.”
에리엔이 그의 이름을 부른 순간, 그는 몸을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황녀.”
처음으로, 그가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황녀.에리엔은 천천히 다가갔다.
그가 검을 손에서 내려놓는 것을 보고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왜 여기에 있었지?”
그녀의 물음에 라비안은 조용히 시선을 내렸ㄷ.
“…잠시, 정리를 하고 싶어서.”
“정리? 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에리엔은 더는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조용히 그의 곁에 서서 함께 정면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연못에 반사되어 잔잔히 일렁였다.
둘 사이의 침묵은 깊었지만, 그 침묵이 마치 어떤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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