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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약속' 19

애나🍬

2025. 04. 10. 목요일

조회수 34

햇빛이 잔잔히 내리쬐는 낮.
성의 서고는 그 시간에도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책장 사이 깊숙한 자리에, 에리엔은 앉아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이 지나갈 때마다 종이가 살짝 떨렸다.
한동안 조용했던 시간, 익숙한 기척이 문틈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 있었구나.”
아르세인의 목소리.
에리엔은 책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
“…찾지 말아달라고 했을 텐데요.”
“그렇게 말하면 더 찾고 싶잖아.”
그는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 앞에 앉았다.
“나 요즘 너 생각만 해.
그래서… 도서관에 책 좀 보러 왔지. 근데 너가 있어. 신기하네?”
“아르세인.”
에리엔은 책을 덮었다.
“장난처럼 굴지 마.”
그는 장난스런 표정을 지우지 않고 말했다.
“너, 내 앞에서 그렇게 차갑게 말할 수 있어?”
“이미 그만두기로 했잖아요.”
“…넌 정말 그렇게 말하는 게 쉬워?”
그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리고 갑자기, 에리엔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그냥… 나랑 같이 가자. 지금. 아무도 없는 곳으로.”
“놔요.”
“에리엔.”
“그만하라고요.
날 붙잡지 마요, 아르세인.”
그 말은 냉기처럼 날카롭게 날아가 그의 손을 얼어붙게 했다.
아르세인의 눈동자가 텅 빈 공허처럼 멈췄다.
에리엔은 그의 손에서 팔목을 뿌리치고, 아무 말 없이 도서관을 나섰다.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아르세인은 천천히 의자에 주저앉았다.
책상 위엔 그녀가 읽고 있던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그는 무심코 책장을 넘기다, 책갈피로 쓰인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그 종이엔 손글씨로 작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모든 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바닥 밑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잠시 말없이 그것을 바라보던 아르세인의 입꼬리가 느리게 휘어졌다.
“에리엔… 넌 아직 나를 완전히 밀어낸 게 아니구나.”
그날 밤, 에리엔의 침실 문에 익숙한 하녀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아가씨…! 큰일이에요. 아르세인 황자가—성문을 나가셨어요.”
“나갔다고요? 혼자요?”
“아무도 데리지 않고, 말 한 마디 없이요… 무기를 챙기셨대요.”
에리엔의 표정이 굳었다.
“…어디로 간 거지.”
그녀는 급히 망토를 챙기며 침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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