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09.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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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차가웠다.
에리엔은 말 위에서 몸을 웅크리며, 라비안이 떠났던 방향을 따라 거침없이 달리고 있었다.
머릿속은 새하얗고,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찾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만이 그녀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러나—
멀리서 희미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을 땐,
그녀는 그것이 반가운 소식이 아니란 걸 직감했다.
뒤를 돌아보자,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무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눈에 익은 얼굴들이었다.
황궁에서, 언제나 자신을 차갑게 바라보던 귀족 가문의 딸들.
그 무리의 중심에는, 황녀 시절부터 에리엔을 싫어하던 카리사 벨로드가 있었다.
“잡아!”
에리엔이 말을 돌리려 했을 때—
순식간에 튀어나온 밧줄이 말의 다리를 휘감았다.
비명이 퍼지기도 전에, 에리엔은 말과 함께 땅에 굴러떨어졌다.
눈앞이 흐려지고, 의식이 아득해질 무렵—
카리사의 목소리가 차갑게 속삭였다.
“안심해, 공주님. 당신을 죽이진 않아.
하지만… 곧 다른 이름으로 살게 되겠지.”
다시 눈을 떴을 때,
에리엔은 차가운 돌바닥 위에 누워 있었다.
두 손은 묶여 있었고, 몸은 낯선 감옥의 구석에 내던져져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그 방엔 곰팡이 냄새와 녹슨 쇠창살 소리만이 가득했다.
“여긴… 어디죠…”
그녀가 힘겹게 일어나려 하자, 감옥 바깥에서 조롱 섞인 웃음이 들려왔다.
“드디어 깨어났네. 황궁의 자랑스러운 공주님께서.”
카리사가 성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날렵한 눈매와 매서운 기운을 풍기는 남자가 서 있었다.
“테오 발렌티아 경이야. 라비안과는 옛 친구지.
이제 공주님의 새로운 약혼자 되실 분이기도 하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말도 안 되는 건 공주님의 위치야.
황궁을 나서 홀로 도망친 건 당신이지.
이젠 황족도 아니고,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아.”
테오는 아무 말 없이 에리엔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라비안과는 다른 차가움과 야망이 서려 있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진 않아, 공주.
하지만 네 이름은 나에게 권력을 주지.”
그 말에 에리엔의 눈이 흔들렸다.
“당신은… 날 이용하려는 거군요.”
“이용?”
테오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너는 이제 내 것이 될 거야.
그리고… 황좌는, 내 것이 되겠지.”
그 순간, 에리엔의 가슴 한가운데서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공포, 분노, 그리고… 다시는 스스로를 잃지 않겠다는 결의.
#1 자유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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