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08.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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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거슬러, 아직 두 사람의 눈빛에 어색함이 없던 시절.
“아르세인, 거기 멍하니 있으면 또 선생님한테 혼나.”
햇살 아래, 푸른 들판 위를 달리는 소년 둘.
그들은 검술 수업을 마치고 성벽 뒤편 언덕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말하는 네가 더 자주 혼나거든, 라비안.”
장난스레 서로를 밀치던 손끝, 맑은 웃음소리.그건, 무거운 현실이 닿지 못한 시간 속의 자유였다.
그러나 그 시절도 길지 않았다.
“그 아이, 알고 있어? 오늘 새로 도착한 귀족 가문 영애.”황궁의 잔잔한 연회석. 어느 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왕위 계승자 아르세인의 약혼녀, 에리엔.
그날 이후, 아르세인의 눈엔 낯선 긴장이 깃들었다.자신의 곁에 있던 라비안이, 은근히 에리엔을 바라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비안은 달랐다.
‘에리엔은 그저 공주님이다. 나는… 충성할 뿐이야.’
그러나 마음은 점점 흔들렸다.그녀의 미소, 말투, 그리고 조용히 건넨 작은 친절들.라비안은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리고 어느 날 밤,아르세인은 자신의 방 창가에서 고요히 서 있었다.
“라비안. 넌… 날 배신하지 않겠지?”
그의 입술은 떨렸지만, 눈빛만은 굳게 닫혀 있었다.
라비안은 그 말에 잠시 침묵했다.그때, 이미 그의 눈에는 에리엔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무거운 공기 속, 라비안의 침실 문이 벌컥 열렸다.
“왜…”
아르세인의 목소리는 억눌린 분노로 떨렸다.
“왜, 에리엔을… 날 속이고, 그녀를 네 곁에 두는 거냐.”
라비안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그저, 묵묵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가 원한 건… 네가 아니야. 나야.”
“하지만 전하께서는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건—”
“그건 핑계입니다. 항상 그러셨습니다. 감정을 말하지 않으시고,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숨기셨죠… 결국, 저보다 먼저 그녀의 마음을 얻은 건 전하셨습니다.”
아르세인의 눈엔 눈물이 맺혔다.그러나 그는 결코 흐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넌 내 가장 가까운 친구였어.그런데 지금은… 내가 가진 모든 걸 빼앗아가려는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라비안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전하. 그분을 지키는 것이 제 전부였습니다.그걸 몰랐던 건, 전하도… 저도… 같았겠지요.”
두 남자의 대화는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문은 다시, 무겁게 닫혔다.그리고 그 뒤엔, 아직 미처 사라지지 못한 오래된 우정과 얽힌 고통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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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09. 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