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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23

애나🍬

2025. 03. 30. 일요일

조회수 53

가온이가 돌아온 뒤, 미르는 마치 오래 잠들었다가 깨어난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수년 동안 애써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다시 들쑤셔졌다.
다시 친해지면 또 헤어질까 봐 두려웠고, 다시 좋아하게 되면 예전처럼 아플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미르는 가온이를 멀리했다.
그냥 예전처럼, 가온이가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가온이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미르야, 도망치지 마."
그 말이 왜 그렇게 아프게 박히는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미르는 퇴근길에 문득 멈춰 섰다.
길거리에 가득한 가로등 불빛, 익숙한 거리, 그리고 낡은 벤치.
그리고 거기,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가온이가 앉아 있었다.
미르는 조용히 다가갔다.
가온이는 미르가 옆에 앉자 작게 웃었다.
"넌 여전하네. 감정 숨기는 것도, 피하는 것도."
미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온이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나한테 화난 거 있어?"
"……아니."
"그럼 왜 피해?"
미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네가 또 떠날까 봐."
그 말이 나오자마자, 모든 감정이 터져 나왔다.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었어. 네가 없으면 그냥 없는 대로 살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나타나서—"
미르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감정들이 무너졌다.
가온이는 말없이 미르를 바라봤다.
"나, 널 다시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어."
그 말에, 가온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난 너한테 돌아오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미르는 움찔했다.
"내가 널 잊을 수 있을 것 같았으면, 애초에 다시 오지도 않았어."
그 말이 너무 단순하고, 너무 똑바로 가슴에 박혀서 미르는 할 말을 잃었다.
가온이가 힘없이 웃었다.
"나도 두려워. 근데 미르야, 난 이제 너한테서 도망치지 않을 거야."
미르는 가온이를 바라봤다.
가온이의 눈빛에는 거짓이 없었다.
몇 년을 돌아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
다시 멀어질 수도, 또다시 아플 수도 있다.
하지만 미르는 이제 알 것 같았다.
좋아하는 마음은, 두려움보다 더 크다는 걸.
미르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했다.
"……알겠어."
"뭐가?"
"이번엔 나도 도망 안 칠게."
가온이는 아무 말 없이 미르를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시작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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