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2. 09.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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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아니 3년 전에 4-2반에서 오늘의일기를 처음 접한 뒤 정말 많은 글을 쓴 것 같다.
심지어 1년 뒤 5학년 때도 학급이 교채됐음에도 그냥 나는 글쓰는 게 좋고,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김세인 선생님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좋아서 오늘의일기를 계속 이용해 왔던 것 같다.
-3월-
그러다가 어느새 초등학교의 제일 형님인 6학년이 되었다.
6학년 반배정이 발표되면서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과 해어졌었다.
그래서 6학년 학기 초반에는 반에 친한 얘들이 별로 없어서 그냥 조용히 모범생 연기를 했다.
담임 선생님께서도 내가 진짜 모범생인 줄 아셨다.
그러다가 형건이라는 친구를 만나면서 약간의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았다.
형건이는 첫 인상이 공부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친구 였다. 다만, 조금 시끄러웠다.
하지만 형건이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틀렸으면 틀렸다 말하는 깡이 있었고, 반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항상 먼저 나서는 친구 였다.
우리 6-6반은 항상 산만하고, 폭력적이었는데 형건이도 가끔 그럴 때가 있었지만 우리반 얘들 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얘였다.
그래서 나는 형건이를 우리반에서 제일 먼저 친구 여겼다.
참고로 '김' 형건이다.
5월
그렇게 형건이와 친해지면서, 다른 얘들과도 친해졌다. 물론 남자 얘들이다.
우린 야구를 통해 친해졌는데, 나는 그때 우리반 남자 얘들과 야구를 하면서 내가 야구를 잘 하는 줄 알았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우리반에서 나의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 했다.
그리고 나는 형건이 다음으로 홍석민 이라는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다.
반 남자 얘들과 야구를 하면서 석민이가 다른 남자 얘들보다 야구에 대해서 더 잘 알고, 꽤 재능이 많은 게 되게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석민이와 나는 꽤 친해졌다.
아마 6월 초 때부터 석민이와 나는 야구 복(유니폼)을 입고 다니며 방과 후에 딱공(딱딱한 야구공)을 가지고 캐치볼을 하며 놀았던 것 같다.
나는 Samsung Lions의 오승환 유니폼을 입었다. 파란색 유니폼이었다. 나는 서울 사람이라서 굳이 대구팀을 응원할 필요는 없었다. 근데 내 주변에 생각보다 엘지 팬이 많기도 하고, 그떄 삼성이 예전보다 계속 잘하고 있어서 나는 삼성을 택했다. 아마 나는 5학년 때도 삼성이었을 거다.
나는 5학년 떄 반 대항 티볼 대회 연습을 하면서 대충 야구에 대해 알게 되었다. 티볼은 티볼 대 위에 야구 공 보다 큰 말랑한 노란색 공을 올려 놓고서 플라스틱 베트로 치는 스포츠 다. 수비 방식은 야구와 같다. 다만, 가만히 있는 공을 베트로 치기만 하면 돼서 투수가 필요 없다. 그래서 아마 5학년 떄는 티볼 잘하는 남자 얘들이 서열(?)이 높았던 것 같다.
나는 그냥 중간 정도 했었다.
아 그리고 내가 왜 오승환을 좋아했냐면, 유니폼을 구매하기 전에, 구글 검색 창 에다가 대충 '삼성에서 제일 잘하는 놈' 이라고 진짜 이렇게 검색했는데, 거기서 오승환이 나와서 오승환을 선택했다. 근데 오승환이 과거엔 진짜 잘했다. 오승환이 야구 하는 나라에선 전부 피칭을 했을 것이다. 일본, 미국, 한국 등 말이다.
게다가 500 세이브라는 대 기록을 썼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뛸 때는 일명 '돌직구' 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구속이 장난 아니었다.
최대 구속이 약 155km 쯤 됐다. 게다가 오승환은 국대도 뛰었었다.
오승환의 번호는 21번이다.
석민이는 Ssg Landers의 김광현 유니폼을 입었었다. 초록색 유니폼 이었다. 아마 삼촌이 랜더스를 좋아해서 자기도 랜더스를 좋아한다고 했었던 것 같다. 아마 김광현이 국내 투수 top.5 안에 들 만큼 실력있는 투수였기 때문에 석민이가 김광현을 좋아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졸업 사진도 각자의 유니폼을 입고 찍게 됐다.
내 사진이 이상하게 나온 것 같은데 굉장히 후회된다.
6학년 1학기 말, 나는 정말 사춘기 말기 환자였다. 시험 점수도 개떡 같았다. 6학년 1학기 과학 식물의 구조와 기능을 50점 맞았었다. 그떄의 나는 정말 사람이 아니라 짐승 새끼 였다.
게다가 방과 후에 여전히 홍석민과 같이 딱공으로 캐치볼을 하며 폼을 잡았었다.
심지어 홍석민과 나는 힐스테이트 단지 내 내리막 길에서 자전거로 질주하며 마치 고속도로의 폭주족을 연상케 했다.
다만 문제는 나와 홍석민이 서로 야한 얘기를 주구장창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반 여자얘들의 가슴, 엉덩이 얘기를 주구장창했다. 가슴 빨고 싶다, 엉덩이 개 크다 등등
하나 더 놀라운 점은 지금 생각해도 나는 이렇게 친구와 야구하고, 서로 야한 얘기했던 그 시절이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왜 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얘기, 하고 싶은 것 모두 할 수 있었던 이 시절이 제일 좋았다.
나와 홍석민은 방학 때도 서로 놀았다. 나는 홍석민을 부모님 몰래 우리집에 들여놔서 같이 숙제를 하기도 했다. 나는 이때 매일 같이 유니폼을 입었었다. 이때 날씨가 찜통이었는데 홍석민과 같이 캐치볼을 했었다. 유니폼에 땀이 묻어서 땀 냄새가 나면 집에 가서 손빨래를 했다. 정말 낭만(?)이 있던 때였던 것 같다.
물론 나는 홍석민이랑만 놀았던 것 아니다. 5학년 때부터 친해진 박시윤과도 매일 같이 놀았었다. 박시윤과 나는 5학년 때 '화성인 릴도지' 라는 채널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친해졌다. 화성인 릴도지는 유명 아이돌들의 노래를 정치적인 내용의 노래로 개사했다. 그 가사가 좀 웃겼던 것 같다. 서로 화성인 릴도지라는 채널을 본다는 걸 안 후 부터 나와 박시윤을 비롯한 5학년 4반 때 남자얘들이 서로 친해졌었던 것 같다.
박시윤은 공부도 잘하고 농구, 야구 등의 구기 종목 스포츠를 매우 잘하는 아이다. 심지어 달리기도 빠르다. 우리는 2023년 겨울에 라면을 먹으며 카트라이더 러쉬 플러스, 야구 게임을 하며 육개장을 먹으며 친분을 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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