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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동계실습을 마무리하며... 2024.02.14

코티

2024. 02. 14. 수요일

조회수 20

피롤로그
이것은 내가 나에게 쓰는 인생의 일기이다. 뭘 하든 시작을 안 하는 이상 결과도 남지 않고 실적도 없기 때문에 올해는 정말 내가 아닌 내가 되도록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에 동계실습이 끝난 이 날에 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아 참, 내가 일기를 쓰는 것을 권하고 싶은 이유는 언어적인 면에서도 어휘력이라는 면에서도 한동안 안 쓰면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러면 40일 가까이 투입해 온 내 동계 실습 journy를 소개하려고 한다.

1. 시작 전 나의 휴가
나는 내 귀한 휴가를 14일 동안 정성의 기대를 쌓기 위한 기간으로서 천보수련원에서 영성을 닦고 싶었다. 천심원에서 출발의 결의와 계획을 세우면서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느끼며 벅찬 마음과 설레는 마음을 품고 시작했었다. 40일 수련의 개회식이 열리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출발의 날을 맞이하였는데 나는 내 이상적인 수련과는 달리 자유롭지도 않았고 모든 것이 upa와 같이 보고와 필수 참석으로 이루어지고 일정 안에는 거의 자율 정성 시간이 없었다. 나는 14일 동안 정성 들이며 천심원에서 살겠다고 생각해서 온 자라 실망감이 많았다. 그렇게 감사하지 못하고 약간의 불만을 가진 채 3일 정도 일정을 소화한 끝에 불 끓는 내 심정과는 달리 몸은 몸살이 나고 열이 났으며 독감 진단을 받았다. "이게 아닌데..."라는 내 양심의 소리가 격리 기간 내내 들려오고 어두운 격리기간을 보낸 것을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린다. 나는 독감 검사를 하기 위해 밖에 나갔다가 처음으로 생명의 위기를 느꼈다. 나만의 기준이지만 고열과 갑작스러운 설사 때문에 가는 길에서 앞이 안 보이게 되고 바닥에 바짝 쓰러지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아, 나 왜 청평에 왔을까"라는 후회의 가득찬 마음이었다. 지금쯤 일본에서 가족과 같이 맛있는 식사를 먹으면서 별 것 아닌 이야기를 하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엇을텐데...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결국 격리 방에서 2024년 새해 원단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원단 기도회 내내 졸리고 결국엔 제대로 새해 기도를 못 드린 채 자버렸다. 정말 부끄러웠고 이런 내가 앞으로 통일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upa 생도가 될 수 있는가하는 정말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결국 upa출발 수련이 시작되는 날이 왔다. 무사히 격리 기간을 끝내며 그 기간 동안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같은 조 이모님한테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하늘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기간이기는 했다.

2. 시작에 앞서 하늘부모님의 서글픈 심정 체휼
드디어 출발수련이 시작되었다. 나는 거기에서 큰 체휼을 하게 되었다. 부단장님께서 훈독회를 주관해 주셨는데 하늘부모님의 심정을 체휼해야 한다고 느꼈고 그렇게 하루의 목표를 하늘부모님의 서글픈 심정을 체휼하자는 내용으로 정해졌다. 천심원 철야 시간에 말씀을 듣고 노래하고 기도한는 순간 순간이 마음이 아픈 힘든 시간이 되었다. 어떤 말씀이나 간증을 들어도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던 식구들에게 하늘부모님의 입장으로 눈물을 흘리고 수없이 눈물이 흘렸다. 그렇게 처음으로 하늘부모님이 매순간 마음을 앓고 계시고 힘드시는구나.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잃어버린 자녀를 애타게 부르시는 분이 내 마음 속에 계셨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구리 팀 넷이 처음으로 만나 회의도 하고 출발을 다짐하여 은혜로운 출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3. 촛불이 내 마음 상태
구리 교회에 와서 5일 밖에 안 지난 1월 11일 밤 나는 내 힘든 마음 상태를 촛불과 같다고 느껴졌으며 철야정성에서 기도하러 온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아아 저 식구님들도 여러 마음 상태를 가지고 기도하러 오신 것이구나. 내 촛불은 이제곧 살아질 것만 같이 약하지만 나보다 더 약한 불도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만이 외롭고 나만 심정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구리 팀보다는 팀 안에서도 한 선배한테 갈등을 느끼며 마음이 많이 약해졌던 것이었는데 위로를 받은 느낌이 들어 너무나 좋았다. 그것은 참어머님의 위로였고 직접적으로 참어머님의 성령의 불이 나에게 내려 온 순간이었다. 매일 밤 철야정성 시간을 통해서 나는 다시 새로운 성초와 거기에 불을 붙여서 출발해야 한다. 매일 밤 이렇게나 큰 은혜와 치유가 일어나는데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다시 새로운 마음을 담아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4. 그래도 회복되지 않았던 내 타락성
그렇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을 해 왔지만 결국 끝까지 한 선배와의 관계는 개선되지 않아 나만 피해자 의식으로 사랑의 수수작용을 스스로 하려고 하지도 않고 빨리 이 교회를 떠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았었다. 후배로서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선한 태도는 아니었다. 뿌리 깊은 효정의 마음은 있었으나 모든 것을 자신의 이익으로 삼고 싶어하고 그러한 마음 때문에 후배들은 눈치없는 존재처럼 생각한 것 같고 후배의 수고와 칭찬의 말을 아끼고 있었던 것 같다. 끝까지 솔직한 내 마음을 고백하지도 못하고 그 사람은 임지를 떠나게 되어 어학연수 필리핀으로 출발하였다. 끝내 기하 생도와 그 선배가 가서도 계속해서 뒷담하고 그 선배의 수고와 노고를 언급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원리적으로 타락행위를 번식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안된다는 양심의 소리도 몇번이나 들려왔는데 내 사심은 브레이크가 안 밟히는 상태이었다. 지금도 살아지지 않는 이 미움의 마음을 놓고 깨달은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얼마나 아벨을 미워했으면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이게 된 상태까지 가고 말았냐는 것에 대한 의문점이 해소된 것 같이 느껴졌다. 아아 가인은 간섭적으로 많은 외로움과 피해를 받아왔구나...그래서 내 본심의 소리와는 다른 소리가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아서 미움의 감정 밖에 안 나왔구나. 나도 그 선배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힘들었고 새새한 표정 하나 하나가 나에게 상처로 다가오고 사랑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어쩌면 내 별 것 아닌 프라이드가 그 선배를 사랑하지 못한 악한 조건이 되었을 수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용서할 수 없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구리 교회를 위한 마음만은 정말 누구보다고 있던 사람이었기에 그 정성의 토대 위에서 내가 구리에 오게 된 것이 감사하는 마음은 있다.

5. 페어와의 관계
내 페어는 한국 사람이고 영적인 사람, 나보다 3살 언니인 사람이다. 한국 사람이랑 될 줄은 몰랐고 여태까지 함께 살아보면서 여러 장단점을 알게 되었는데 우리의 관계성에 있어서 좋은 점은 서로 깊게 성찰하여 하늘부모님의 참부모님의 비전을 이루고자 하는 효정의 마음이다. 서로 느낀 점을 공유하면서 앞으로의 구리에 대한 비전을 그려 가는 것이 재밌었다. 나랑 안 맞는 점이 있다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인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과의 관계성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신경을 써 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성화들과 대할 때도 최대한 어색함이 들키지 않도록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고 상대의 의견을 최대한 들으려고 했다. 심방 중 갑자기 우리만 아는 사람의 이름을 꺼내어 성화학생을 곤란하게 하거나 말투때문에 쎈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 왜 또 분위기 망치는 거야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나왔는데 그것은 내 관점으로서 보는 페어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은 꼭 그 자세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내가 갖추지 못하는 점을 통해서 성화학생한테 사랑을 줄 수 있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앞으로 더 감사의 심정을 잊지 않고 선한 수수작용을 해 간다면 좋은 시너지를 일으켜서 더 구리 땅이 발전하여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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