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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보다 사람을 더 많이 죽인 놈

박은식

2023. 04. 09. 일요일

조회수 112

히틀러는 우리에게 지금까지 역사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사람은 한 몇 천만명을 죽인 희대의 학살자인데.
이보다 더 많이 사람을 죽인 절단마가 있었으니..
바로 '마오쩌둥' 이라는 빨갱이다.
마오쩌둥이 1949년 10월 1일에 집권한 후 사망할 땨까지 중국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을 확인하여 총 몇 명을 죽였는지 계손해 봤더니,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한다.
이로 인하여 장제스의 국민당은 섬으로 쫓겨나게 되고,
중국 대륙이 본격적으로 빨갛게 물들어지기 시작한다.
근데 마오쩌둥은 이때 대대적인 피 숙청을 이어나가게 된다.
관료, 지식인, 친국민당, 세력들에 댜한 숙청을 전개하게 된다.
만주와 화북 지역에 75만명이 희생 되었고, 화중과 화남 지역에서는 135만명이 희생 되었다.
이때 마오쩌둥은 전국민의 0.1%를 죽이면 좋다고 하는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히틀러와 다름 없는 행동이다.
그리고 1949년부터 1953년 까지 중국은 토지 개혁을 실시하게 되는데, 이때 토지개혁이 무상몰수 였다.
이렇다보니 자산가와 지주들의 저항이 있었다.
마오쩌둥은 이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하게 된다.
그래서 총 630명이 희생된다.
말로 햐결하지 못하면 무력으로 행동하는, 마오쩌둥은 깡패다.
그리고 이후, 한반도에서는 6.25전쟁이 일어난다.
중국은 한국이 통일될 경우, 미군과 직접적우로 국경을 맞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여, 전면적으로 6.25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 이때가 모두가 알다시피, 1950년대 였다.
물론, 이때 지도부에서는 큰 갈등이 있었지만, 본토에서 미군과 싸우느니, 차라리 한반도에서 싸우는게 낫다고 생각해서 순망치한을 외치며 60만 대군을 파병하게 된다.
이때 중공군은 수적 우위를 통해 전략을 펼치게 되었고, 보병 위주의 기동 포위전을 펼치며 유엔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했으나, 보급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공격울 하다보니, 큰 피해를 받게 된다.
이때 중공군은 무려,13만 6000명이 사망하게 된다.
1951년부터는 숙련된 공산당원 공무원층이 형성되었는데 이때 잠시 살려두었던 국민당 시절의 실무 공무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자행된다.
1951년부터 1952년까지 정치개혁 운동이 일어나게 돈다.
바로 '삼반 오반 운동' 이었다.
엘리트 집단을 통재하고, 부패관료를 처벌하며, 공산주의 정권을 공고히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된 운동 이었다.
이 과정에서 관료와 지식인들이 숙청되는데, 약 10만명이 희생된다.
6.25 전쟁이 끝나고, 1957년부터 1958년까지 중국에서는 반우파투쟁이 일어나게 된다.
중국이 건국되고, 공산주의 지식인들도 새 정권의 각계 구성원으로 참가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마오쩌둥에 노선에 방해가 되는 자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오쩌둥은 이 사람들에 대한 탄압을 하기 위해, 중국 내 우파를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반우파 운동을 전개했다.
근대 문제가 우파와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탄압의 대상이 되는데 이 과종에서 약 120만명의 사람들이 희생 당한다.
이후, 마오쩌둥은 중국은 기술은 적고 인력은 많으므로, 노동력을 이용하여 기술을 상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모두 인력을 통해서 기술을 극복할 수 있다는 멍청한 고정관념을 주장한다.
그래서 대약진운동을 전개하게 되는데, 이때가 1958년 이었다.
이는 1961년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로 인하여 공업노동력 수요로 농촌에서 과도한 인력을 강제로 착출 하였고, 이로 인하여 도시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여, 필수품의 공급부족으로 이어졌고, 노동력을 잃은 농촌의 농업생산력은 급격히 조하되어, 농업 경제의 파탄을 가져오게 된다.
거기에다가, 소련과의 관계 악화로 인해, 경제원조 중단이 발생했고,
이때 제사해 운동도 같이 하게 되는데, 해충을 잡아 먹는 참새를 전부 다 잡아버리는 자충수를 둬버리는 바람에, 450만명이 희생당한다.
또 이시기에는 공포 정치가 이어지기도 했다.
중간 간부나, 하위 관료들은, 지도부가 목표를 달성하라고 닦달을 하다보니, 목표 설정을 위한, 각종 무리수를 두게 된다.
그래서 대약진 운동을 강제적으로 전개하게된다.
이 과정에서 고문과 학대가 중국 전지역에서 발생하게 된다. 잘 걷지도 못하는 노인이나, 어린이들을 때려죽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450만명이 희생을 당한다.
1958년에는 라싸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중국이 달라이라마 14세를 납치하려고 했다는 소문이 티베트에 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티베트에서는 소요사태가 일어나게 되는데, 중국은 군대를 투입하여 이들에 대한 진압을 하게 된다.
이때 8만명이 중국군에 의해 희생된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다.
대약진 운동으로 인하여, 중국 전체가 파멸적인 결과가 초래되자, 이를 주도한 마오쩌둥의 권위는 추락하여, 사실상 2선으로 밀려나게 된다.
다만, 마오쩌둥은 이시기에도 절대적인 카리스마와, 군통수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오쪼둥에 정면으로 도전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여기서 마오쩌둥이 다시 권력을 되찾겠다고 부르주아 세력의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며, 이를 위해 청소년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으로 구성된, 홍위병이 조직되었고,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전국에서 문화대혁명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20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희생 당한다.
이후, 중국에서 1만명 단위로. 사망하는 경우는 없었다.
마오쩌둥 집권기 동안 7941만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희생당했다ㄷㄷ
수백, 수천 단위로 사망한 사건은 모두 제외를 했기 때문에 수치는 이보다 클 것이다.
마오쩌둥은 1949년 10월 1일부터, 1976년 9월 9일까지 집권을 했으니 총 9841일을 재임했다.
이는 하루에 8069명이 매일 죽은 것과 같은 수치다.
참고로, 2차 세계 대전 때 전사자 수가 7300만명 이상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 수치가 어떤지는 감이 올 것이다.
진짜 장난 아니게 다 죽였다.
타이완 국가 가사에 8천만 국민을 살햐햤다고 나왔는데, 진짜로 그랬다니 진짜로 충격이다.
마오쩌둥은 세계사에 꼭 나와야 된다.
마오쩌둥은 다른 학살자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민족을 학살 했으므로, 더욱 더 *레기다.
8천만이나 죽인 거면 손에 얼마나 피를 묻힌 거야?
진짜 아시아에 이런 학살자가 있다는 사실에 처음에 진짜 놀랐음ㄷㄷ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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