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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사람들은 왜 다 불행할까?

박은식

2023. 03. 11. 토요일

조회수 84

1453년, 11월 10일,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의 수양대군의 '게유정난' 으로 12살 단종이 유배를 가고 경혜공주와 그녀의 남편, 정종까지 유배지로끌려가고, 단종은 끝내 유배지에서 사약을 청해서 승하하고, 수양대군은 끝내 왕이 되, 세조가 되고,
1468년 9월 7일, 그를 이어 그의 둘째 아들, 예종이 즉위하지만 즉위하자 1년 만에 승하 했다.
그 다음에는 1469년 11월 28일, 세조의 적차손인 성종이 즉위하고,
그 다음에는 1495년 1월 25일 성종의 아들인 폭군 정치 연산군,
그 다음에는 1506년 9월 18일 연산군의 이복형제인 중종이 즉위하고
다음, 1544년 12월 4일 그의 아들 인종이 즉위하는데 조선 왕 중 가장 즉위 기간이 짧은 왕이었다. 그리고 1545년 8월 7일에 승하하였다.
그 다음에는 1945년 8월 12일 중종의 또 다른 아들인 엄마 눈치 본 명동 아니, 명종이 즉위하고,
중종의 또또 다들 아들인 1567년 8월 7일, 선조가 즉위 하는데 40여년 후에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는 피난을 가고 6년 만에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나지만 많은 피해가 있었고 선조가 병으로 승하하자,
그의 아들인 1608년 3월 17일, 광해군이 즉위해, 명나라와 청나라 중 후금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광해군은 '중립 외교' 정책을 실시 했지만 '인조방정' 으로 서인 일파들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1623년 4월 13일, 광해군의 이복형제인 인조를 왕으로 세운다.
뭐, 내가 아는 걸로는 인조는 그냥 허수아비 왕 이나 다름 없었는데 인조는 뭐, 한 업적 따위가 없는 것 같은데 아는 게 있으면 댓글로 달라주길 바란다.
아무튼 그 다음 왕은 청나라에 강제로 끌려간 봉림대군은 1649년 6월 22일, 효종으로 즉위하고 청나라를 정벌하기 위한, 북벌론을 계획 한다.
그리고 효종은 청나라와의 관계가 안좋았었음에도 불과해도 청나라가 나선족 즉, 러시아가 자신들과 국경 분쟁이 계속 일어나자 조선과 청의 연합군이 형성되고 결국엔 승리했지만 효종은 신가귀의 의료 사고로 다출혈로 인해 승하 했고,
그리고 1659년 6월 28일, 그의 외아들인 현종이 즉위한다. 현종은아버지 효종이 죽자맞아 예송논쟁에 크게 휘말리게 된다. 효종은 군사적으로 나라에 신경을 많이 썻다면 현종은 정치적으로 신경을 많이 썻다.
그리고 현종이 결핵균으로 승하하자, 1674년 9월 22일, 숙종이 즉위한다.
현종은 비록 어린 나이에 즉위 했지만, 훗날 조선 왕조 역대 촤강의 왕권을 이뤄 냈고 태조 왕권 다음으로 한국 역사상 최대의 일부다처 바람둥이다. 그리고 불 같은 성격을 가졌고, 환국 정치를 하였는데 이게 설명이 워낙 길어서 그냥 패스하고~
숙종이 또 똑같이 병으로 승하하자, 1720년 7월 21일, 그 유명한 나의 조상, 장희빈과 숙종의 아들인 경종이 즉위한다.
경종은 어머니인 희빈 장씨가 후궁으로 다시 강등되고 인현왕후가 복위 되면서 피는 안섞였지만 법적으로 엄마가 되므로 인현왕후를 마치 어머니 모시듯 모셨다고 한다. (왜 왠수를 저렇게 지극히 모심? 이렇게 적은 나도 용서가 안되네!)
경종이 승하하자, 1724년 10월 16일, 경조의 이복 동생인, 영조가 즉위 한다.
경종이 승하하자, 1724년, 숙빈 최씨의 아들인, 영조가 즉위한다.
영조는 즉위기간이 역대 역사 왕들 중에서 가장 많은 왕으로 무려 52년에 달했다.
그만큼 영조에게는 한 가지 역사에서 잔인한 사건을 불러 일으켰다. 바로 그의 아들을 뒤주 속에 집어넣어 아사 시킨 임오화변이 손꼽힌다.
그 유명한 탕평책을 실시했지만 그와 별개로 가정사는 언제나 불행했다. 정비인 정성왕후 서씨와는 자식이 없었고, 후궁 (정빈 이씨)에게서 얻은 장남 효정세자는 10살도 채우지 못하고 까닭없이 요절했다. 뒤를 이어 후궁 영빈 이씨 사이에서 늦둥이 아들인 이선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훗날에 사도세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영조는 돌도 지나지 않은 늦둥이 아들을 곧바로 세자로 책봉하였고, 아들이 젖먹이 유아였던 시절부터 과도한 학습을 강요 하였고, 정서적인 학대를 당한 이선은 결국 정신병 증세를 보였고, 각종 살인, 폭행, 음주가무 같은 기행을 일삼았다. 세손이 다음 왕위를 잇기 위해서 세자 폐위를 물릴 수 없었던 영조는 결국 뒤주 속에 사도세자를 가둬 죽이는 극약처방을 내렸으며, 이후 자기가 죽인 아들에게 생각할 사, 슬퍼할 도, 를 넣은 사도라는 시호를 내린다.
그리고, 영조가 승하하자, 1776년 4월 27일, 정조가 즉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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