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4. 26.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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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글에선 나약했던 한족 왕조였던 송나라에 대해서 알아봤다.
송나라는 문치주의를 필두로 군사력이 쇠퇴하였고 장강 이남에서만큼은 끈질기게 버텼지만 끝내 쿠빌라이 칸에게 멸망 다하고 만다.
이 장강 이남의 한족들은 원 제국 치하에서 최하층민 취급을 받았고, 가축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한족 신민들을 주원장이 끌어모아 홍건적 무리를 만들었고, 이들은 심지어 한국사에도 나오는 대단한 반란군이다.
홍건적은 한족의 앞도적인 인해전술을 이용하여 몽고족 오랑캐들을 몽골초원으로 내쫓았고, 그들의 수장인 주원장을 황제로 세우고 대명제국을 선포한다.
명나라는 여태 다른 중원제국들에 비해 한반도에 우호적이었다.
일단 송나라가 들어서면서 당나라 때의 변방 통치력을 상실하고 주변 유목민족들이 들끓기 시작한다.
유목민족들은 평생을 말 위에서 살아가며 초원의 부족한 자원을 약탈로 충당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거의 짐승에 가까웠다.
따라서 농경민족, 국가들끼리 힘을 합치지 않을 수 없었다.
송나라는 수당의 후예이기에 신생국가 왕씨의 고려의 잠재력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고려는 형제국가 발해를 멸한 거란족을 짐승취급하며 대조왕건은 훈요 10조에 거란족들을 배척하라 병시하였고, 거란족은 송나라를 치기 위해 후방의 고려와 친선을 맺고자 사신과 낙타를 보내었지만 이들은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
고려는 한민족의 2번째 통일국가다.
이들은 과거 통일신라 때의 국제상황과는 다른 상황에 처했다.
신라 때는 그나마 발해여서 망정이었지만 고려시대 북방은 정말 경계해야할 대상이었다.
따라서 고려는 북쪽 변경을 북계와 동계를 통해 그곳에 30만 광군을 두어 상비하였고, 통일신라 때 그저 넓어진 땅덩어리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선진적인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구시대의 제도를 약간 변화시켰던 통일신라 때와는 달리 발해처럼 중국의 3성 6부제를 참고하여 효과적인 통치 체제를 이뤘다.
그리고 중국의 상황이 급변하고 북방의 오랑캐들이 날뛰는 상황에서 고려는 송나라의 파트너가 된다.
거란은 당연히 이에 반발하여 군사를 여러번 보냈지만 그 성공한 경우가 없었다.
아마 고려가 송나라보다 거란에 더 많이 시달렸을 것이다.
송나라는 그나마 세패를 통해 주변 이민족들과 돈을 통한 평화를 이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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