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4. 09.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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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
부끄럼 많은 생애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론 '양심에 거리끼어 볼 낯이 없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담 양심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로 '자기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 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옳고 / 그름 , 선/ 악이 '어떠한' 기준으로 '어떻게' 구별이 되는가이다.
사실 이상하지 않은가? 무엇이 악하고, 무엇이 선한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갓난아이의 본성은 확실히 악하다고 보는 편이다. 쉽게 말해서 제멋대로 하니까..
그렇담 간난아기와 이성이 발달한 성인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나는 그 차이점이 '사회적 규범'을 배웠냐에 따라 갈린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면에서 선과 악의 구분 기준은 '사회적 규범'이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 (人間) - 굳이어 '사이 간'이 사람을 표현하기 위해 있는 이유. 사람은 사회 속에서 존재 가능하고, 언제나 사회에 속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전반적으로 사회에 속하여 들지 못하는 한 이방인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정거장에 있는 육교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도 그것이 선로를 건너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 못 하고 그저 정거장 구내를 외국의 놀이터처럼 복잡하고 즐겁고 세련되게 만들기 위해 설치된 것이라고만 믿었습니다. ~.. 나중에 그것이 단순히 손님들이 선로를 건너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극히 실용적인 계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단박에 흥이 깨졌습니다.} - 13p
두 문장은 '육교'라는 같은 사물을 다른 인식으로 바라보게 된 주인공을 보여준다. 건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그저 즐기기 위한 육교와 건나다니기 '위해' 만들어진 육교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주인공은 육교의 진짜 의미를 깨닫자 흥이 깨졌을까?
이 논점에서 나는 실존주의의 향기를 짙게 맡았다. 만약 사람이 육교로 비유된 것이라면? 전자는 본질이 정해지지 않은 채 자유로운 사람이고, 후자는 본질이 정해진 즉 삶의 목적이 정해져버린 사람이다. 문장으로 보아 주인공 요조는 실존적인 삶을 추구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회는 후자에 가깝다. 나는 실존주의 철학을 참으로 좋아하지만, 현실과는 항상 괴리감이 있는 듯한 느낌에 아쉬움을 느낀다. 요조도 그렇지 않았을까? 자유를 원하지만, 자신의 본질을 정해버린 사회에서 그는 이방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요조는 정치인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굉장히 눈치가 빠르고 순종적이다. 절대 거절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은 묵살시킨다. 이런 그의 태도는 사회에서도 반영된다. 친구 사이에서의 단 1초의 침묵과 어색함도 허용하지 않은 채 광대가 되길 자처했고, 좋아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내심 뿌듯해한다.
그렇게, 요조는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맞춰나가기 시작한다. 그때 요조는 호리키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요조는 그에게서 술과 창녀를 배우게 된다.
시대상 맥락을 고려하여, 그 당시 요조에게 창녀는 인간의 존재가 아니었다. 즉 사회가 만든 규범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인가 그는 창녀들의 품에선 그 어느때보다 마음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저는 점차 세상을 조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97p
위와 같은 생활을 지속해오던 요조는 문뜩 세상을 무시해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에 세균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처럼, 세상이 정해놓은 듯한 규칙, 삶의 목적들을 모조리 무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요조는 자신과 정 반대인, 사회를 믿고 사람을 너무나도 믿는 요시코를 만나게 된다. 요조는 그녀의 그런 면을 사랑하게 되었고, 둘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순탄할 줄 알았던 결혼 생활은 한 사건으로 산산조각 난다. 바로 자신에게 만화를 의뢰하던 한 상인이 요시코를 강간한 사건이다. 요시코는 강간을 당한 후 마치 변명하듯 '아무짓도 안 한다고 했는데..'라고 말한다. 정말 순수함을 넘어 경외로운 순수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요조는 그런 그녀의 순수함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고, 결국 '사회'라는 존재를 다시 인식하게 된다.
그 후 요조는 거의 삶을 포기하게 된다. 그는 사회에 자신을 맞춰보기도, 사회에 적응해보려고 하기도, 또한 사회를 무시해보려고도 노력했지만 세상은 그의 노력을 전부 짓밟았다. 결국 그는 정신병원에 수감되게 되었고, '정신병자'라는 각인이 자신에게 박히게 됨으로써 '인간 실격'이 되었다고 말한다. 더 이상 그는 정상적인 사회인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는 아버지까지 떠나보내게 된다. 자신의 삶의 목적을 처음으로 정해주었던 사람. 인간. 그 본질에 동화되려고도, 도망가려고도 어쨌든 그렇게 노력했건만, 그 본질을 정해준 인간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 " 이봐, 이건 칼모틴이 아니야. 헤르모틴이지." 그렇게 말하다 말고 후후 웃어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페인'이란 단어는 희극 명사인 것 같습니다. 잠들려고 먹은 것이 설사 약이고, 게다가 그 설사약 이름은 헤노모틴이라니. } - 132p
나는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했다. "이봐 이건 행복한 삶 (칼모틴)이 아니야. 불행한 삶 (헤르모틴)이지. ~ 행복하기 위해 했던 수 많은 행동들이, 결국 불행을 낳다니.."
{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자상하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처럼 좋은 사람이었어요." }
- 136p
이 마지막 구절은 뒤에 이어지는 단편 소설인 <직소>와 연관이 된다. <직소>는 예수를 따라다니는 기롯 유다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작품인데, 결국 이 작품을 통해 다자이 오사무는 배신자의 아이콘인 유다와 같은 인물에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인간은 모순적이고, 양면적이며, 합리화히길 좋아하는 이기적인 존재. 하지만 그런 존재마저 하느님 처럼 좋은 사람일 수 있다는 일말의 연민. 저 마지막 구절을 통해 다자이는 요조, 즉 자기 자신의 대한 일말의 애정과 희망을 남겨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별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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