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2. 02.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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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비: 4:3
주연: 당나귀
주제: 당나귀의 마음을 아는 건 당나귀 뿐.
영화엔 흔히 P.O.V 즉 시점샷이 많이 사용된다. 카메라가 피사체의 시점인 것처럼 촬영을 함으로써 그 피사체의 입장을 보여줄 수 있는 샷이다. 이 영화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카메라'라는 존재를 인식하게끔 만들고, 카메라 = 피사체 라는 공식을 부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당나귀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당나귀의 시점샷이 대거 등장한다. 하지만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은 여기서 질문을 던진다. 카메라, 즉 인간이 당나귀의 시점을 알 수 있을까? 감독의 대답은 아니오다.
카메라가 동물을 대변하는 눈이 아닌, 기계적인 요소라는 것을 보여주는 샷들도 존재한다. 때때로 새빨간 화면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굉장히 인공적인 기술로, 카메라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결국 이 영화는 한 객체의 입장을 대변하고 싶어하는 카메라의 욕망과 카메라의 욕망을 들춰내는 감독의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편집>
이 영화에선 편집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흔히 '쿨레쇼프 효과'라고 부르는 편집법이 있다. 샷 A는 동일하지만, 뒤에 등장하는 샷 B에 따라 관객이 느끼는 감정이 달라진다는 효과인데, 대사 한 줄 없는 당나귀가 주인공인 이 영화엔 이 효과가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고물상 안 사나운 맹견을 보여준 후, EO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면, 관객은 "겁을 먹었나봐!" 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 동물 보호단체가 등장하여, 묶여있는 EO에게 "고통스러워하잖아요!" 라고 말한 뒤, EO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그럼 관객은 " 고통스러워하나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이오의 표정은 똑같다. 어쩌면 이오는 그 당시 "아 배고프다"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객은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데로 이오의 심정을 대변한다. 앞서 말한 카메라의 욕망과 같은 모습이다. 우리는 편집을 통해 객체의 심정을, 상황을 마음 데로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촬영과 편집은 지속해서 등장한다. 흰색 암말이 뛰는 모습을 마치 이오가 상상하는 듯한 샷을 찍기도 하며 말이다.
총에 맞아 죽은 여우, 풍력 발전기에 부딪혀 죽은 듯한 올빼미를 보여준 뒤,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를 보며 울부짖는 이오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관객이 이것을 보고, "이오가 인간들로 인해 고통받는 동물들을 보며 괴로워하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계속해서 관객을 속이려든다.
이오가 여우 농장주를 발로 차는 샷도 동일한 맥락이다. 여우를 전기충격기를 통해 기절시키는 농장주에게 분노하여 발길질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정녕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카메라 로봇을 통해, 이 모든 것이 카메라의 망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이를 통해 말하고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생각의 재고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가 동물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동물 보호단체가 정말 동물을 보호 했는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는 것 같다.
죽음을 상징하는 듯한 새빨간 화면. 분명 오프닝의 EO는 사랑 받으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를 도축장으로 보낸 것은 누구 때문인가. 동물 보호단체, 축구클럽 회원, 살라미 운반사 등 많겠지만, 확실한 것은 인간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영화가 끝나고, "이 영화는 동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신경썼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밟힌다. 이것은 인간의 입장인가, 동물의 입장인가...
별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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