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 04.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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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닌텐도는 슈퍼 패미컴을 출시하며, 한창 게임계를 뛰어넘고 있던시절,
경쟁자가 없던 닌텐도는 새로운 콘솔을 기획하고 있었으나..
그러나,1994년, 소니가 출시한 그 콘솔,'Playstation.' 즉, 플스를 출시했다.
그때의 플스는 대부분 지역에서 정오부터 10만대 물량을 모두 팔았을 정도로 엄청났다.
닌텐도는 비슷한 시기에 콘솔을 발매하려 했지만 그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닌텐도는 어찌저찌 프로세서를 만들기는 했지만,
게임 개발이 또다른 문제였다.
당시 닌텐도는 콘솔의 3D성능뿐만 아니라
새로운 게임 체계가 갖추어 저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카메라를 어떻게 제어해야할지에 대한 경험이 거의없었다.
그결과, 닌텐도는 새로운 컨트롤러 설계에 집중했다.
기존까지의 십자키로는 3D세상을 누빌수 없었으므로,
그래서, 당시 닌텐도 개발자들은 '아날로그 스틱'.
즉, 우리가 흔히아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의 스틱이 미세한 조작을 가능하게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날로그 스틱을 어디에 달지가 문제였다.
결국, 아날로그 스틱을 정중앙에 박아버렸다.
생김새와 그립감은 좀 낮설었지만,
아날로그 스틱과 Z트리거라는 새로운 시도를 했고,
마침내,1996년, 닌텐도는 '슈퍼마리오 64' 와 함께 닌텐도 64를 발매했다.
발매 초창기,가장 큰 이목을 끈건, 마리오가 3D로 뛰어노는 모습이었다.
자연스러운 카메라 워크,
3D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레벨디자인으로,
슈퍼마리오 64는 그시절 3D게임의 교과서같은 포지션이었다.
이후,'마리오카트 64'같은 이후에 발매한 게임또한 인기를 끌었고,
북미지역을 포함한 초기 판매량은 경쟁 콘솔들보다 우위에 있었으나,
닌텐도 64 의 설계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닌텐도 64는 CPU외의 모든작업을 별개의 기능을 담당하는 듀얼 프로세가 담당했다.
문제는, 이둘이 메모리를 공유했다는 것이고,
고속메모리를 채택해 메모리 용량이 매우 작았다.
메모리 용량이 작은 만큼, 큰 텍스쳐를 불러오기 불가능했고,
복수의 프로세서가 사용할 메모리를 관리해주는 코드를 짜는것 매우 까다로웠다.
닌텐도 64는 당시 대세였던 CD-ROM대신에,
자체 규격 카트리지를 채택했다.
그 카트리지는 로딩속도가 매우 짦았고,불법 복제도 억제할수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롬 용량에서 치명적 제약이 생기기에, 개발 난이도를 더 높이게 됬다.
물론, 닌텐도는 그 억제속에서도, 명작들을 뽑아냈다.
스타폭스 64는 3D 슈팅게임 장르의 기준을 새로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그 전설의 게임.
1998년,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가 발매했다.
유려한 스토리와 웅장한 세계, 대담한 퍼즐구성으로,
역사상 최고의 게임이라 극찬을 받았으나,
골든아이 007, 반조-카주이 같은 서드파티 계열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서트파티들은 닌텐도 만큼의 기술력과 콘솔 이해도가 없었다.
닌텐도 64의 태생적인 한계로,
그들이 만들고자하는 게임을 구현할수도 없었다.
대표적으로 스퀘어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였다.
닌텐도 64에 담기 힘든 용량으로 인해,
스퀘어는 소니의 플스로 갈아탔다.
대형게임사나 중소 게임사들의 이탈로인해,
닌텐도는 64DD라는 닌텐도 64의 용량을 더늘리는 기기를 개발하고 있었지만,
64DD 제공하는 용량확장은 CD-ROM보다 낮았으며,
기술적문제와 보급률 문제로,발매가 미뤄지더니,
1999년, 몇몇 게임만 남겨두고 조용히 발매하였다..
결과적으로 닌텐도 64는 약 3300만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지만,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약 1억대를 팔았다.
결국 닌텐도는 닌텐도 64의 수많은 명작들에도 불구하고,
플스의 서드파티 라인업을 무너뜨리지 못하며,
처음으로 패배를 맛보게된다....
(처음으로 시도한 주제의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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