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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의 마지막

아비정전

2025. 12. 31. 수요일

조회수 14

2025라는 숫자가 처음에는 맘에 들지 않았다. 미묘한 짝수 배열 속 수학적 미를 뽐내는 2024라는 숫자가 아름다워서 일까. 고등학교 1학년을 보낸 2024년이 뜻 깊어서 일까. 2025라는 숫자를 마주 보는 상황에서 이젠 2024라는 숫자가 익숙해져 일까. 보내버리기는 너무 아까운 아쉬운 한 해였고, 늘 그랬듯 잡을 수 없는 한해였다.

당시 고3으로 올라가는, 그때는 아직도 너무나 멀다고 느낀 고3이 되는 선배님들을 말들이 떠오른다. "아쉬운 한해였다고" "잡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고" 누구보다 한 해를 알차게 보낸, 당시의 나로서는 나약한 소리에나 다름없었다. 나는 나를 빛내기 위해, 나를 알아가기 위해, 나를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누구보다 2025를 아름답게 채우겠다고. 2025도 보내기에는 아쉬운 한해가 되도록 만들겠다고.

2025를 마무리 짓는 현재의 나로서는 그 당시의 마음가짐이 너무나 허무맹랑하고 한편으로는 대담하다고 느껴진다. 그런 나는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2025은 나에게 의미있는 한해는 못 되었다. 악재의 연속 속에서 지금 보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크나큰 실망은, 내가 멘탈이 박살났는지도 모르고 벌벌 떨며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애썼다. 세상은 나를 끝으로 몰았고, 나는 허둥지둥 길을 잃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가혹했고, 나는 무감각에 서서히 취해갔다. 중독보다는 침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 같잖은 무감각은 나를 빛내는 칼날을 무디게 만들었다. 세상에 대한 감흥을 잃어갈 때 쯤, 빌어먹을 유전자가 억겁의 시간을 버텨온 기질을 발휘했는지, 나는 나도 모르게 감흥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과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나는 그러다 어쩌다 영화를 보고, 시를 읊조리고, 문자를 느끼고, 번듯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느낄 수 있는, 아니 어쩌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있는 예술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감흥을 뛰어선 나에게 세상 그 자체가 되었다. 나를 알리기 급급했던 나는, 알참을 원하던 나는, 여백의 미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나는, 삶에 여백이 생기자 비로서 숨 쉴 구멍이 생겼다.

이제는 2026이라는 숫자를 마주하고 있다. 2025를 겪은, 2025를 느낀 나는 이제 모소 2026을 받아들이겠다. 먼 조상들부터 피했다는 아홉수... 열아홉살이 되는 나는, 그 텍스트마저 폭력적인 고3이 되는 나는 어쩌면 이 한 해를 누구보다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매일매일 일기를 써봐야겠다. 문자를 씀으로서 감흥에 취해보자.

안녕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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