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5.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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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비: 2.39:1
주연: 폴 다노 (행크 역), 다니엘 레드클리프 (매니 역)
주제: 인생 별 거 없다.
친구 앞에서 방귀 하나 못 뀌는데, 어떻게 삶을 즐길 수가 있겠어?
이런 괴상한 영화일 수록 매니를 행크의 무의식적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편한 것 같다. 대게 파이트클럽처럼 무의식의 형상화는 자신이 원하는 존재로 투영되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는 그런면에서 매니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행크는 버스에 탄 유부녀를 몰래 도촬하고 짝사랑할정도로 음침하고 소심하다. 또한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무뚝뚝하여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런점에서 그는 자살을 선택하는데, 그 순간 매니를 만나게 된다.
매니는 방귀며, 성적인 반응이며, 낯부끄러운 말이며, 뭐든 간에 제약이 없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 속 벨라의 상태와 같다. 사회적인 울타리 없이 순수한 상태. 또한 그들의 공통점은 인생을 즐긴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기 때문에 즐길 수 밖에 없다. 즉 매니는 행크와 정 반대의 인물로써, 행크가 무의식적으로 꿈꿔온 모습이다. 또한 매니는 인간 도구라고 불릴정도로 다재다능한데, 매니가 행크의 무의식이라면, 사실 행크가 다재다능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인물이 자살을 선택한다는 점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정말 단점만 있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살 가치가 있고, 삶을 즐겨야하는데, 인생에 중요한 문제는 다 치우치고 방귀하나로 눈치보는 세상이기에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것 같다.
스위시 아미 맨에선 그냥 방귀 뀌고, 노래 부르고 싶을 때 부르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말하라고 한다. 물론 그것이 쉽진 않지만, 우리가 인생을 즐기는 방법도 그것 뿐인 데 어쩌겠냐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방귀를 뀌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회의 눈치를 적당히 보라는 의미 )
그런 의미에서 엔딩이 굉장히 독특하다. 만약 행크가 미친 상태라면 (시체를 보고 망상을 한 것이라면), 그저 한 청년을 미치게 만든 사회에 대한 분노와 그의 대한 비극성이 강조될 뿐이다. 하지만 만약 진짜 매니가 다시 살아난 것이라면, 모두가 정말로 매니의 모습을 본 것이라면, 행크는 더 이상 매니가 필요 없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무의식과 의식이 통합되어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증거와 계기가 조금 미약하긴 하지만)
이 두 엔딩 사이에서 나는 후자의 편을 들고 싶다. 행크가 진정으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별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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