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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서점 2화 겁나김;;

선량한 이야기꾼

2025. 11. 12. 수요일

조회수 55

페이지를 넘겼다. 에밀리의 글씨는 갈수록 흐트러져 있었다.
"1923년 10월 3일. 나는 서점에 들어온 지 3일째다. 주인을 찾아 금지된 서고까지 왔다."
"그를 죽이면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손이 떨렸다.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10월 4일. 서고에서 그를 찾았다. 하지만... 그는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살아있지 않았다."
"이 서점 자체가 그였다. 벽도, 책도, 공기도. 모든 것이 그의 일부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계속 읽었다.
"그를 죽이려 한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먹이가 아니라 '재료'였다."
"여섯 번째 방문자가 오면, 의식이 완성된다고 그가 말했다."
"여섯 개의 영혼으로 새로운 책을 쓴다고. 그 책이 완성되면..."
다음 페이지가 찢겨져 있었다.
마지막 남은 페이지에는 피로 쓴 글씨가 있었다.
"유일한 방법: 여섯 번째가 오기 전에 그의 심장을 찾아라."
"서고 깊숙한 곳, 그가 가장 아끼는 책 속에 숨겨져 있다."
"붉은 표지, 제목 없는 책. 그것이 그의 심장이다."
밑에 작은 글씨로 추가되어 있었다. "하지만 조심해. 그 책을 열면..."
그 다음은 읽을 수 없었다. 잉크가 번져 있었다.
갑자기 일기장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페이지들이 저절로 넘어갔다.
마지막 빈 페이지에 새로운 글씨가 나타났다.
"2025년 11월 10일. 여섯 번째가 내 일기를 읽었다. 이제 시작이다.
"일기장을 품에 넣었다. 에밀리의 경고가 필요할 것 같았다.
준비를 마치려는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서."
돌아보니 아름이 서 있었다. 아까 그 창백한 여자.
하지만 뭔가 달랐다. 그녀의 눈이 텅 비어 있었다. 동공이 사라진 것처럼.
"당신... 왜 여기..." 나는 뒷걸음질 쳤다.
"주인님이 부르셨어." 그녀의 목소리가 기계적이었다. "여섯 번째를 데려오라고."
그녀 뒤로 다른 사람들이 나타났다. 책장 사이에서 하나둘씩.
모두 눈이 텅 비어 있었다. 좀비처럼 천천히 다가왔다.
"이미 지배당한 건가..." 나는 서고의 문을 등지고 섰다.
"같이 가자. 고통스럽지 않을 거야." 한 남자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목에서 검은 잉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혈관처럼.
"싫어!"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쾅!' 문이 닫혔다. 하지만 안전하지 않았다.
서고 안에서 또 다른 존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책장들 사이에서 그림자가 꿈틀댔다. 아까 봤던 종이 가면의 존재만이 아니었다.
책 속에서 나온 듯한 괴물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날개 달린 악마, 긴 손톱을 가진 귀신, 눈이 여섯 개인 짐승.
"이건... 소설 속 괴물들..." 에밀리가 경고했던 것들이었다.
뒤에서 문이 흔들렸다. 아름과 다른 이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열어줘... 같이 가자..."
앞에서는 괴물들이, 뒤에서는 지배당한 사람들이.
손바닥의 문양이 더 강하게 빛났다. 하지만 이걸로 모두를 막을 수 있을까?
서고 중앙에서 붉은 빛이 강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여섯 번째여... 드디어 왔구나." 노인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방을 나와 다시 통로로 나왔다.
횃불을 든 자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붉은 빛을 향해 걸어갔다. 빛은 점점 강렬해졌다.
통로의 끝이 보였다. 거대한 문이 서 있었다.
문은 검붉은 가죽으로 덮여 있었고, 금빛 글씨로 뭔가 적혀 있었다.
"여섯 개의 영혼이 모이는 곳.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
문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웠다. 아니, 얼음처럼 차가웠다.
심호흡을 하고 문을 밀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은...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끝없이 높은 천장, 수천 개의 책장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다시 일기장을 꺼내 펼쳤다. 뭔가 놓친 게 있을 것 같았다.
"여섯 번째는 특별하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에밀리의 일기를 더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중간쯤에서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다.
"10월 3일 오후. 주인이 말했다. '다섯 개의 영혼은 재료일 뿐, 여섯 번째가 핵심이다.'"
"여섯 번째만이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엮을 수 있는 자라고."
"왜 여섯 번째인가 물었다.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여섯 번째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자. 미완성된 영혼.'"
미완성된 영혼? 무슨 뜻이지?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작은 글씨로 메모가 적혀 있었다.
"나는 이해했다. 우리 다섯은 이미 이야기가 끝난 자들이었다."
"에밀리 - 사랑을 잃은 자. 토마스 - 전쟁에서 돌아온 자."
"그렇다면 여섯 번째는... 아직 선택하지 못한 자."
선택하지 못한 자?
손에 든 내 책이 또 뜨거워졌다. 펼쳐보니 새로운 페이지가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평생 선택을 미뤄왔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누구를 사랑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래서 이 서점이 나를 선택했다. 미완성된 이야기를 완성시키기 위해."
숨이 막혔다. 이건... 내 인생 그 자체였다.서둘러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았다.
문 앞에 주저앉아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기장과 내 책을 나란히 펼쳤다. 뭔가 연결고리를 찾아야 했다.
"여섯 번째는 선택하지 못한 자...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건..."
주머니를 뒤졌다. 핸드폰, 지갑, 그리고 펜 하나.
펜을 꺼내 들었다. "책이 현실을 만든다면, 내가 쓸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책의 빈 페이지에 조심스럽게 글을 써보려 했다.
하지만 펜이 종이에 닿는 순간 손이 얼어붙었다. 글씨가 써지지 않았다.
"안 되는 건가..." 좌절하려는 순간, 에밀리의 일기장이 빛났다.
새로운 글씨가 나타났다. "쓸 수 없다면, 지워라."
지운다? 무슨 뜻이지?
다시 내 책을 봤다. "나는 평생 선택을 미뤄왔다"는 문장을 응시했다.
손가락으로 글씨를 문질렀다. 놀랍게도 잉크가 번지기 시작했다.
마치 아직 마르지 않은 것처럼. 천천히 글씨가 지워졌다.
그 순간,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풀린 것 같았다.
"이야기를 바꿀 수 있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벽의 글씨를 다시 확인했다. "2025년, 여섯 번째 방문자 -"
내 이름이 여전히 비어있었다.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일어서서 주변을 살폈다. 통로 바닥에 떨어진 빨간 책 조각이 보였다.
아까 비밀 통로를 열 때 뽑았던 그 책. 집어들자 표지에 글씨가 있었다.
"방어의 주문집". 페이지를 넘기니 이상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걸 외우면..." 중얼거리며 문양을 손바닥에 따라 그렸다.
문양이 완성되자 손바닥이 희미하게 빛났다. 뭔가 힘이 느껴졌다.
"도망쳐!" 본능이 외쳤다. 나는 옆쪽 책장 사이로 몸을 던졌다.
괴물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날개 달린 악마가 공중에서 덮쳤다.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문양이 빛을 발하며 보호막을 만들었다.
악마가 보호막에 부딪혀 튕겨나갔다. "효과가 있어!"
하지만 보호막이 금방 흐려졌다.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책장 사이로 미친 듯이 달렸다. 서고는 입구보다 훨씬 넓었다.
뒤에서 괴물들의 비명 소리, 발톱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도망칠 수 없다, 여섯 번째여." 노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특별한 이유를 알고 싶지 않나?"
"듣고 싶지 않아!" 나는 소리쳤다.
"너는 다섯과 다르다. 그들은 이미 완성된 이야기였지."
노인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도망칠수록 더 가까워졌다.
"에밀리는 사랑을 잃고 끝났고, 토마스는 전쟁 후 폐인이 되었지."
"하지만 너는... 시작도 하지 못한 자다."
나는 귀를 막으려 했지만 목소리는 머릿속에서 울렸다.
"평생 선택을 미룬 자. 무엇도 사랑하지 않은 자. 누구도 되지 못한 자."
"그래서 너는 완벽한 '빈 페이지'야."
발이 걸려 넘어졌다. 바닥에 쓰러지며 뒤를 봤다.
괴물들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공격하지 않았다.
마치... 몰아가는 것 같았다.
일어서려는데 앞쪽에서 붉은 빛이 터져 나왔다.
서고 중앙이었다. 거대한 책상 위에 한 권의 책이 떠 있었다.
붉은 표지, 제목 없는 책. 에밀리가 말한 '노인의 심장'.
그리고 그 앞에 노인이 서 있었다.
"도착했구나." 노인이 미소 지었다. 황금빛 눈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제 네가 왜 특별한지 보여주마."
노인이 손가락을 튕겼다. 갑자기 주변 공간이 일그러졌다.
책장들이 사라지고, 하얀 공간이 펼쳐졌다.
그 공간에 다섯 개의 형체가 떠올랐다. 에밀리, 토마스, 그리고 다른 셋.
"그들은 각자의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지. 슬픔, 분노, 절망, 후회, 공허."
노인이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너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이 될 수 있어. 다섯 개의 감정을 담을 그릇이 되는 거야."
심장이 얼어붙었다. "나를... 그릇으로?""그래... 그릇이라니 무슨..." 나는 뒷걸음질 쳤다.
노인이 천천히 다가왔다. "여섯 개의 영혼이 하나로 합쳐지면, 완벽한 이야기가 탄생하지."
"그 이야기는 이 서점을 현실로 확장시킬 거야. 세상 전체를 집어삼킬."
"그리고 너는 그 중심이 되는 거다. 영원히."
나는 에밀리의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에밀리가 경고했어!"
"심장을 찾으면 당신을 죽일 수 있다고!"
노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낮고 으스스한 웃음이었다.
"에밀리?"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 일기를 믿었구나."
갑자기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가면을 벗는 것처럼, 주름진 피부가 벗겨졌다.
그 아래에서 나타난 얼굴은... 젊은 여자였다.
창백한 피부, 긴 검은 머리. 1920년대 드레스.
"에... 에밀리?" 나는 비틀거렸다.
"맞아." 그녀가 차갑게 미소 지었다. "놀랐니?"
"하지만... 당신은... 첫 번째 방문자..."
"맞아. 첫 번째였지." 에밀리가 붉은 책에 손을 얹었다.
"1923년, 나는 이곳에 갇혔어. 진짜 주인을 죽이려고 했지."
"그리고... 성공했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심장, 이 붉은 책을 찢어버렸지. 그는 사라졌어."
"하지만 그 순간 깨달았어. 서점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에밀리가 책을 쓰다듬었다. "서점은 주인을 원했어. 누군가 이 자리를 채워야 했지."
"그래서... 내가 주인이 되었어. 아니, 될 수밖에 없었어."
"탈출하는 대가로, 난 이곳의 지배자가 되었다."
손에 든 일기장이 갑자기 재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일기는 미끼였어. 너를 여기까지 데려오기 위한."
일기장이 완전히 부서져 바닥에 흩어졌다.
"100년이 넘게 기다렸어. 완벽한 여섯 번째를.""기다려!" 에밀리가 손을 들었다. 괴물들이 멈춰 섰다.
"하지만... 넌 조금 다르네." 그녀가 날 응시했다.
"다른 다섯과 달리, 너는 진짜 '비어있어'. 순수하게."
"그래서... 작은 기회를 주지."
에밀리가 손가락을 튕기자 바닥에 소용돌이가 생겼다.
"이건 서점의 가장 깊은 곳으로 가는 길이야. '잊혀진 서고'."
"거기엔 쓰이지 못한 이야기들, 끝나지 못한 책들이 있지."
"30분. 그곳에서 답을 찾아봐. 찾으면... 네가 이길 수도 있어."
"왜 기회를 주는 거야?" 나는 의심스럽게 물었다.
"100년은 길어. 너무 길어." 에밀리의 눈에 잠깐 슬픔이 스쳤다.
"어쩌면... 네가 날 자유롭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소용돌이가 점점 커졌다. 뛰어들지 않으면 삼켜질 것 같았다.
"30분 후엔 다시 의식을 시작해. 준비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몸이 빙글빙글 돌았다. 무중력 상태처럼 떠다녔다.
그리고 '쿵'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일어나 보니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천장도 벽도 없이, 그저 끝없는 어둠 속에 책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수천, 아니 수만 권의 책들이 공중에 떠 있었다.
모두 펼쳐진 채로, 페이지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잊혀진 서고..." 중얼거리며 걸었다.
발밑에도 책들이 깔려 있었다. 밟으면 페이지가 바스러졌다.
어떤 책을 봐야 할까? 수만 권 중에서 어떻게 찾지?
그때 내 손에 든 검은 책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책이 저절로 열리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나침반처럼.
"저쪽인가..." 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었다.
떠다니는 책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점점 깊숙이.
그곳에, 다른 책들과 달리 한 권의 책이 빛나고 있었다.
하얀 표지, 금빛 글씨. 제목은 "미완성된 창조자".
손을 뻗어 책을 잡았다. 펼치는 순간, 글씨가 눈앞에 떠올랐다.
책에 뭐가 쓰여있을까? 네가 정해줘!재시도지마법첫 페이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서점의 주인은 죽일 수 없다. 하지만 대체할 수는 있다."
"주인의 힘은 '쓰는 것'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반대로..."
"'지우는 자'가 되어라."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소거의 마법. 존재를 지우는 궁극의 주문."
"하지만 대가가 있다. 지우는 자도 함께 사라진다."
심장이 철렁했다. "나도 사라진다고?"
계속 읽었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
"'비어있는 자'만이 이 마법을 쓰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
"왜냐하면 지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손이 떨렸다. 이것이었다. 내가 특별한 진짜 이유.
에밀리가 말한 '빈 페이지'란 약점이 아니라... 유일한 무기였다.
다음 페이지에 주문이 적혀 있었다.
복잡한 문양과 낯선 언어들. 입으로 읽기 시작했다.
"아스트라... 베르고... 니힐..."
주문을 읽을수록 몸이 가벼워졌다. 마치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 문장. "소멸의 끝에서, 무(無)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주문을 다 외우자 책이 빛으로 변해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온몸에 힘이 흘렀다. 하지만 이상한 힘이었다.
무언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지우는 힘. 존재를 부정하는 힘.
손을 들어보니 손가락 끝이 희미하게 투명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걸로... 에밀리를 지울 수 있어."소용돌이가 다시 나타났다. 시간이 다 된 것 같았다.
뛰어들자 몸이 빨려 올라갔다. 다시 붉은 서고로 돌아왔다.
에밀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왔구나. 뭘 찾았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답을 찾은 모양이네." 에밀리가 미소 지었다. "그럼 시작하자."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다섯 개의 형체가 나타났다.
에밀리, 토마스, 그리고 세 명의 영혼들. 모두 눈이 텅 비어 있었다.
"먼저, 그들이 너를 채울 거야."
다섯 형체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토마스가 제일 빨랐다.
주먹이 날아왔다. 막으려 했지만 주먹이 내 몸을 관통했다.
"크윽!" 차갑고 날카로운 고통이 퍼졌다.
토마스의 분노가 내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전쟁의 기억, 죽음의 공포.
"안 돼..." 무릎을 꿇었다. 머릿속이 그의 감정으로 가득 찼다.
두 번째 형체가 등을 스쳤다. 절망이 밀려왔다.
"싸워!" 나는 소리쳤다. 손을 뻗어 토마스를 잡았다.
소거의 마법을 발동했다. "아스트라!"
토마스의 형체가 흔들렸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 약해." 에밀리가 말했다. "네가 '비어있다'는 게 무기이지만..."
"그만큼 힘도 약하다는 뜻이야."
세 번째, 네 번째 형체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공허와 후회가 몸을 관통했다. 온몸이 무거워졌다.
바닥에 쓰러졌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일어나..." 스스로에게 명령했다. "지금 포기하면 끝이야."
다섯 번째 형체, 슬픔이 천천히 다가왔다. 가장 무거운 감정.
"베르고... 니힐..." 주문을 중얼거렸다.
손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더 강하게.
슬픔의 형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형체에 닿았다.
"소멸하라!"
형체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완전히 사라졌다.
"하나... 성공했어..."
하지만 몸은 이미 한계였다. 네 개의 감정이 내부에서 날 찢고 있었다.
에밀리가 박수를 쳤다. "인상적이네. 하지만 이미 늦었어."
그녀가 손을 들자 나머지 네 형체가 내 몸속으로 강제로 밀려들어왔다.
"으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분노, 절망, 공허, 후회. 네 개의 감정이 몸을 갈기갈기 찢었다.
"이제 그릇이 완성됐어. 내가 마지막 조각을 채우면..."
에밀리가 다가왔다. 그녀의 손이 내 이마에 닿았다.
차가운 감촉. 그녀의 기억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100년의 고독, 배신, 그리고... 후회.
"잠깐..." 나는 그녀의 기억 속에서 뭔가를 봤다.
에밀리도 한때는 '비어있던' 자였다. 선택하지 못했던 자.
그래서 그녀가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거였다.
"너도... 나랑 같았구나..."
에밀리의 눈이 흔들렸다. "뭐?"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았다.
"아스트라 베르고 니힐!" 주문을 완전히 외웠다.
온몸이 빛으로 변했다. 소거의 마법이 폭발했다.
에밀리가 뒤로 튕겨나갔다. "이럴 수가!"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손을 그녀에게 뻗었다.
"넌 100년 동안 여기 갇혀있었어. 자유롭고 싶다고 했잖아."
"그럼... 같이 사라지자."
"뭐라고?" 에밀리가 당황했다.
"소거의 마법은 둘 다 지운다. 너도, 나도."
"그럼 이 서점은 주인을 잃어. 그리고..."
내 손이 붉은 책에 닿았다. 심장에.
"붕괴될 거야."
에밀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친놈! 그럼 넌!"
"괜찮아. 난 어차피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빛이 더 강렬해졌다. 책이 재로 변하기 시작했다.
에밀리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몸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싫어! 아직... 아직 안 돼!"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마법은 멈출 수 없었다.
서고가 흔들렸다. 책장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모두... 도망쳐..." 나는 남은 힘으로 외쳤다.
갇혀있던 영혼들, 아름과 다른 사람들에게.
"서점이 무너진다!"
흰 빛이 모든 걸 집어삼켰다.
에밀리의 마지막 말이 들렸다. "고마워..."
그리고...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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