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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잡화점 2화

선량한 이야기꾼

2025. 11. 12. 수요일

조회수 47

밤하늘에 별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뿌연 도시의 밤, 현우는 늘어지지 않는 야근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발걸음으로 거리를 터덜터덜 걷고 있었어. 삼십 대 초반의 그는 촉망받던 신인 사진작가였지만, 지금은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었지. 그의 어깨엔 한때 '영혼의 동반자'라 불렀던 카메라 가방이 묵직하게 매달려 있었지만, 그 안에 든 카메라를 꺼낸 지는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어. 무채색으로 변해버린 일상 속에서 그는 자신이 찍고 싶었던 세상의 색깔마저 잊어버린 듯했지. 피로와 알 수 없는 공허함이 그의 온몸을 짓눌렀고, 그는 그저 어디든 잠시 숨을 곳을 찾고 싶었을 뿐이었어.

그때, 그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허름한 골목 끝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작은 불빛이었어. 마치 누군가 그를 위해 손짓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지. 가까이 다가가 보니 '별똥별 잡화점'이라고 쓰인 낡은 간판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었어. 그는 이끌리듯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어. 휘황찬란한 보석보다 더 반짝이는 먼지가 가득한 가게 안, 솜사탕처럼 달콤한 별똥별 냄새와 쌉쌀한 옛날 종이 냄새가 뒤섞여 희한한 향기를 풍겼어.

"여기가 대체 어디지...?" 현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계산대 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손바닥만 한 별똥별 요정을 발견했어. 피곤에 절어있던 그의 표정에서 요정은 문득, 마치 사진에서 색깔이 모두 빠져버린 듯한 깊은 상실감을 읽었지. 요정은 빙긋 웃으며 조용히 자신의 작은 날개를 살랑였어.

요정은 계산대에서 사뿐히 날아 내려와 잡화점의 한구석, 오랫동안 빛바랜 천막 아래 가려져 있던 작은 가마솥을 툭 건드렸어. 오래된 가마솥은 요정의 손길이 닿자마자 어두웠던 표면에서 푸른빛이 감돌며 온기가 피어올랐지. 요정은 잡화점 바닥에 쌓인 오래된 별빛 먼지 한 줌과, 달빛에 반짝이는 유리구슬에서 뽑아낸 새벽 이슬 몇 방울을 가마솥에 넣었어. 지글지글, 낮은 소리와 함께 가마솥 안의 액체는 진한 어둠을 머금었다가, 곧 찬란한 별빛처럼 반짝이며 끓어오르기 시작했어. 잃어버렸던 세상의 온갖 색들이 한데 엉켜 피어나는 듯, 알록달록하면서도 아련한, 이루어질 수 없는 꿈과 같은 향기가 상점 가득 퍼져나갔어.

요정은 잠시 가마솥을 지켜보다가, 눈길을 돌려 잡화점 깊숙한 곳에 있는 아주 작은 나무 주방으로 사뿐히 날아갔어. 그곳에는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낡은 통들이 줄지어 있었지. 요정은 그중에서도 뚜껑에 신비로운 문양이 그려진 통을 열고, 그 안에 담겨있던 은하수를 압축해 놓은 듯 반짝이는 가루를 한 꼬집 집어 들었어. 작은 병에 담았던 것과는 다른, 더 농축되고 영롱한 가루였어. 요정은 그 가루를 가마솥에 흩뿌리자, 끓어오르던 액체는 더욱 진하고 선명한 무지갯빛으로 물들기 시작했지. 그리고는 나뭇가지처럼 생긴 작고 빛나는 요술 지팡이를 꺼내들고, 끓어오르는 내용물을 계속해서 부드럽게 저었어. 가마솥 안에서는 휙, 휙, 휙- 하는 규칙적인 소리와 함께 별빛이 튀어 오르고, 액체는 마치 꿈속처럼 투명하면서도 깊은 빛깔로 변해가고 있었어.

가마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요정은 완성된 액체를 섬세하게 만든 작은 잔에 따랐어. 투명하고도 빛나는, 세상의 모든 색이 응축된 듯한 신비로운 약이었지. 요정은 현우에게 그 잔을 건넸어. 현우는 요정이 만든 잔을 보자 이상하게도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에 홀린 듯, 잔을 받아들자마자 망설임 없이 꿀꺽 마셨어. 차가운 액체가 그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차가움과 동시에 뜨거운 빛이 온몸을 휘감았어. 눈앞이 번쩍이며 세상이 일렁였고, 현우는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어. 그 순간, 그의 몸에서는 눈부신 별빛이 뿜어져 나왔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지.

별똥별 잡화점에는 다시 고요함만이 내려앉았어. 현우는 어둠 속을 헤매었어. 무겁고 끈적거리는 어둠, 발버둥 쳐도 끝없이 가라앉는 심연이었어. 그런데 그 어둠 속에서 아주 멀리, 작고 희미한 오색찬란한 빛이 깜빡였어. 그 빛은 점차 선명해지며, 현우에게 손짓하는 듯 다가왔지. 익숙하고도 그리운, 심장이 뛰는 듯한 온기와 함께.

점차 빛은 선명한 영상이 되어 현우의 눈앞에 펼쳐졌어. 그것은 그가 열정을 다해 찍었던 순간들이었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의 웅장함, 북극에서 오로라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경외감, 이른 새벽 안개 자욱한 마을 풍경 속에서 피어오르던 희망,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하며 자신에게 찬사를 보냈던 스승의 미소... 하지만 가장 선명하고 강렬했던 것은, 바로 사랑하는 딸의 모습이었어. 현우의 세상 모든 색깔이었던 딸은 해맑게 웃으며 카메라 앞에서 재롱을 부렸고, 딸을 찍는 순간만큼은 그의 사진도, 그의 인생도 가장 생생한 색으로 가득했었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과 딸과의 소중한 추억이 빛바래지 않고, 여전히 자신 안에 깊이 새겨져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어. 어둠 속에서 빛은 점점 밝아지고, 그가 가장 사랑했던 카메라의 셔터 소리와 딸의 웃음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그를 감싸 안았어.

현우의 뺨에는 다시 눈물이 흘렀지만, 이번에는 사무치는 슬픔만이 아니었어.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굳어있던 마음의 얼음을 살살 녹이는 듯한, 설명할 수 없는 감동과 위로가 밀려왔어. 그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과 딸과의 소중한 추억이 빛바래지 않고, 여전히 자신 안에 깊이 새겨져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지.

아련한 꿈과 같던 기억들이 서서히 아득해질 무렵, 현우는 길고 깊은 숨을 내쉬며 눈을 떴어. 그는 여전히 별똥별 잡화점 한가운데 쓰러져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더 이상 처연하지 않았어. 얼굴에는 비록 눈물 자국이 선명했지만, 그 안에는 짙은 우울함 대신 잔잔한 평화와 함께 새롭게 싹튼 강인함과 색깔이 돌아온 열정이 자리하고 있었지. 그는 조용히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작은 별똥별 요정을 향해 미소 지었어.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진심을 담아 "고맙소... 정말 고맙소..." 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어. 그의 눈빛은 이젠 잃어버렸던 색에 대한 미련을 넘어, 사랑하는 딸과의 소중한 추억이 자신 안에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그것이 자신을 다시 일어설 힘이 되어줄 것임을 깨달은 듯 보였어.

요정은 현우의 고백에 빙긋 웃으며, 계산대 위로 날아올라 그의 옆에 서서 그에게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눈빛을 보냈어. "무엇을... 드리면 되겠소?" 현우는 조심스럽게 물었어. 요정은 고개를 젓더니, 현우가 매고 있던 낡고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작은 날개로 살짝 건드렸어.

"나는... 당신의 '진심이 담긴 한 컷'을 원해요."

요정의 음성은 아주 작았지만, 그 울림은 현우의 가슴을 때렸어. 돈이 아닌, 그의 잃어버린 열정 그 자체를 요구하는 듯한 말이었지. 현우는 잠시 망설이다, 천천히 카메라 가방을 열고 그 안에 든 카메라를 꺼냈어. 렌즈캡을 벗기자 차가운 렌즈가 그의 손에서 온기를 되찾는 듯했어. 그는 길게 숨을 들이쉬고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잡화점 안을 둘러봤어. 그의 눈에는 무미건조했던 세상이 이제 선명한 색채로 가득 차 보였어. 빛바랜 가구들은 따뜻한 황금빛을, 먼지 쌓인 책들은 깊은 푸른빛을, 그리고 요정이 앉아있는 계산대는 반짝이는 별빛을 띠고 있었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뷰파인더에 눈을 고정하고 셔터를 눌렀어.

찰칵!

오랜만에 들리는 셔터 소리. 그는 인화된 사진을 확인했어. 사진 속에는 요정이 앉아있는 계산대 위에 영롱하게 빛나는 작은 별똥별 조각 하나가 놓여있었고, 그 주위로 오색찬란한 먼지들이 춤을 추는, 마치 꿈속의 한 장면 같은 풍경이 담겨 있었어. 사진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그의 열정과 아름다움을 다시 찾아준 순간 그 자체를 담고 있었지.

요정은 현우가 건넨 사진을 받아 들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어. 그리고 그 순간, 상점의 모든 것이 마치 별똥별처럼 흩어지듯 점차 투명해지고 흐릿해지기 시작했어. 현우는 희미해져가는 요정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다음 순간 그는 달빛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새벽 거리 한복판에 홀로 서 있었어. 별똥별 잡화점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지만, 현우의 가슴속에는 새로운 새벽의 빛과 함께 사랑하는 딸과의 추억이, 그리고 다시 찾은 사진에 대한 열정의 온기가 가득했어. 그는 길고 깊은 숨을 내쉬고는,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닌 희망의 시작인 듯, 고요히 떠오르는 아침 해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겼어. 그는 다시 들리지 않던 카메라의 셔터 소리를 찾아,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담기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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