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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영화광

2025. 10. 27. 월요일

조회수 41

주제: 불편할 권리를 빼앗긴 세상의 행복은 행복일까?

<요약>
질병x 노화x 벌레x 불편 x 모두가 편안하고, 행복한 유토피아.
알파 - 베타 - 감마 - 델타 - 엡실론
이렇게 다섯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계급에 맞는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계급에 100% 만족하는 세상. 감정적으로 불쾌함을 느끼면 '소마'라는 부작용 없는 마약을 섭취함으로써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세상.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언제든 자유롭게 만나고, 가볍게 헤어지는 것이 당연시되는 세상. 그럼으로 엄마, 아빠, 가족, 임신 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얼굴을 붉히는 세상. 압도적인 과학의 발전과 자본주의를 선택한 대신, 신과 고전 문학, 그리고 재활용이 금지 된 세상.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다 만족한 것 같다. '버나드 마르크스'를 제외하고.
버나드는 알파 플러스, 즉 최상 계급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엡실론 계급처럼 키가 작고 못생기게 태어났다. 이곳은 계급에 따라 지능과 신체 능력이 결정되는데, 버나드는 안타깝게도 지능만 가지고 태어나 항상 스트레스와 열등감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렇기에 버나드는 이 시스템에 불만족했고, 레니나라는 베타 계급 여성과 야만인 구역으로 여행을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린다와 존을 만나게 된다. 린다는 과거 문명인이었지만 길을 잃어 야만인 구역에서 살게 되었고, 존은 그의 아들이다. 이들은 버나드의 도움으로 다시 문명세계로 돌아오게 되는데, 사람들은 늙고 추해진 린다의 모습을 보자 역겨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존은 외모도 뛰어나고, 야만인이었기에 모든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된다.
버나드는 존을 이용해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고, 그렇게 이 세계에 만족하게 된다. 그러자 주인공은 존으로 바뀌게 된다. 존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이나 신과 같은 옛 것들이 모두 금지되고, 사람들은 아무하고나 잠자리를 갖는 모습과 촉감 영화라는 5D 영화를 경험하며 멋진 신세계인 줄 알았던 이곳에 진짜 모습을 보게 되고 사람들에게 정신차리라며 일침을 날린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총 관리자 무스타파 몬드는 그에게 말한다.
"이곳은 비극이 없기에 셰익스피어 소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 "사람들은 나이가 들 수록 고독해지고,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신을 믿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죽음에 대한 공포도, 외로울 일도 없습니다." 그렇다. 이들은 과학과 안정을 선택했고, 그렇기에 신과 문학은 포기한 것이다. 그러자 존이 말한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존은 그렇게 다시는 과학의 산물을 이용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홀로 살게 되지만, 결국 과학의 산물인 소마에 잔뜩 취해 굳건한 다짐을 지키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자살을 하게 된다.
{아치형 복도의 꼭대기 바로 밑에 매달린 한 쌍의 발이 눈에 띄었다. 천천히 , 아주 천천히, 느긋한 두 개의 나침반 바늘처럼 두 발은 전혀 서두르지 않고 오른쪽으로 돌면서 북쪽, 북동쪽, 동쪽, 남동쪽, 남쪽, 남남서쪽을 가리켰다. 그러더니 잠깐 멈추었고, 몇 초가 지난 다음에 서두르지 않고 다시 왼쪽으로 돌았다. 남남서쪽, 남쪽, 남동쪽, 동쪽}

<느낀 점>
핵심 주제는 '불편할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의 행복은 진정한 행복인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이 세계에 설득 당했다. 우선 불편함이라는 감정은 우리가 발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안정적이고 편안하기만 한 세상에선 사람들이 무기력해지고, 더욱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선 태어날 때 부터 자신의 삶에 만족하도록 세뇌를 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는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괜찮은 것 아닐까? 야만인의 입장에선 그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도 야만인의 삶은 이상하게 보인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뉴런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나빠보이지만은 않는다. 결국 불편함으로 인한 원동력은 불편함을 없애기 위한 원동력 아닌가? 그렇다면 처음부터 불편함이 사라진 세상에선 불편함이 필요없는 것 아닐까?
물론 대량생산을 발전시킨 포드를 신 급으로 숭배하는 모습에선 자본주의로 인해 사라진 인간성등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난 지금에 세상이 소설의 '뉴런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극도로 개인화가 되어가고 있고,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은 연예인, 평범하면 죽도록 공부를 하는 모습에선 태어날 때부터 삶이 정해져있는 소설 속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그런데 소설 속에선 엡실론들마저 자신들의 일에 만족을 하는데, 솔직히 좋은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또한 인상 깊었던 점은 버나드 마르크스이다. 분명히 카를 마르크스를 비유하는 인물로 공산사회가 진정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헉슬리가 나름대로 답을 했다고 보았다. 결국의 버나드의 불만은 열등감이다. 버나드는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했을 땐 사회를 비판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땐 그 사회에 순응한다. 결국의 노동자들이 원하는 공산주의 또한 얻지 못했음에 생겨나는 열등감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럴바엔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로 인한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진정으로 이상적인 사회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존은 불쾌함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나는 그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몸에 채찍을 휘두르고, 욕망을 억제하는 모습은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는다. 신을 숭배하는 인디언과 과학을 숭배하는 '뉴런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둘 다 변화를 받아드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에 소설 속에서 극단으로 치우친 둘에게 정답을 찾을 순 없다고 보았고, 내가 굳이 하나를 골라야한다면 존의 세계보단 포드의 세계를 선택할 것 같다.

별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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