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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이유

다혜가다해

2025. 09. 19. 금요일

조회수 13

김유연은 공부한다. 공부해서 뭐하나? 김유연이 공부하는 것은 여느 학생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나, 원하는 진로를 가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냥 잘 살기 위해서. 여기서 '잘 살기 위함'의 뜻은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반항은 귀찮기에 등의 말이 포함됐다. 참 피곤하게 산다는 말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들어도 잘 살기 위한 목적이 더 중요했으니. 그런데 너 진짜 대단하다, 열심히 산다 같은 말을 들었을 때는 왜 이리 마음속에서 뭐가 쿡쿡 찔렸는지 모르겠다. 딱히 불타는 의지 같은 걸 갖고 있진 않았다. 내가 열심히 사는 건가? 그러다가 빽빽하게 채워진 노트 보면 아, 그런 것 같다 생각했다. 유연의 부모님은 성적을 지켜보시지만 하나하나 다 자세히 보진 않았다. 대신 툭툭 내뱉는 말들은 유연을 조이긴 충분했다. 저기 의사 아들, 이번 모의고사 3등 했다더라. 유연이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지. 그럼 듣고 그냥 고개 끄덕거렸다. 말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유연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반항이었다. 집 가는 길에 그 병원이 보이면 애꿎게 발에 채는 돌을 그 방향으로 차곤 했다. 길거리가 어두워서 막상 돌이 어디로 갔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김유연이 그토록 노력해서 들어간 대학은 퀘스트 하나를 깨면 또 새로운 퀘스트가 생기는 반복의 지옥이었다. 고등학생 때 흘렸던 코피는 오직 대학에 들어오기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대학에서 흘리는 코피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보고서를 작성하다 툭 떨어진 피를 보고 든 생각이었다. 2학년쯤 돼서 유연은 조금 회의를 느꼈다.
"엄마 나 휴학할래."
"왜?"
"휴학하면서 공부 좀 더 하려고."
"그래도 너 강의 계속 안 들으면 뒤처져, 휴학을 꼭 해야 해?"
"보충하고 싶은 게 있어서. 학원 다닐게."
그 길로 곧장 휴학 신청을 했다. 교수님과 면담을 하는데 또 이유를 물어보셨다. 이유. 그 놈의 이유.
유연은 그때 처음으로 환멸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늘 어두컴컴한 시각에 집에 도착했기 때문이 아닌, 보고서에 코피를 흘렸기 때문이 아닌, 바로 지금 이 상황 때문이었다. 이유를 대야만 쉴 수 있는 환경. 쉬는 이유가 있어야 되는 환경. 그 놈의 이유.
휴학을 한 뒤로는 낮잠 실컷 자고 밥 실컷 먹고 나름 호화스러운 생활을 보냈다. 부모님이 매일 일하러 나가시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학원은 다녀도 3~4시간 이내가 다였다. 그동안이랑은 비교도 안되게 여유 시간이 늘어났다. 쉬는 거 좋은 거구나. 유연은 그때 처음 제대로 쉬는 법을 배웠다. 대학 동기가 아닌 중고등학교 친구들 만나서 수다 좀 떠니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유연은 22살이 되어서야 또래처럼 사는 법을 알았다.
휴학 생활 6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엄청 긴 시간이었다. 2개월 차에 접어들자 슬슬 지루한 감이 들었다. 사실 유연은 조금 불안했다. 매일 하던 실험도, 매일 보던 전공 책도 없으니 처음엔 천국이었지만 지금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참 아이러니했다. 돌고 도는 쳇바퀴 같은 삶도 지금 보면 안정된 삶이었다. 유연은 지침 또는 불안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거지 같았다. 대학생은 무조건 휴학 한 번 해봐야 된다더니, 다른 사람들은 휴학했을 때 뭘 할까. 유연이 고민했다. 면허? 지금 따긴 싫고. 자격증, 굳이 딸 거 없는데. 뭘 해야 하지. 오늘 치 공부를 끝낸 뒤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띠링.

야, 요즘 뭐 하고 사냐? 오후 10:22

유연의 과거사에 대해 알아보자. 김유연의 생활기록부를 보자면 하나같이 공통으로 쓰여 있는 것이 있다. 성적 우수. 교우관계 원만.
성적 우수야 그렇다 치고. 교우관계 원만, 이것은 굳이 속 까보지 않아도 맞는 말이었다. 워낙 털털한 성격에 남이 자신을 미워했으면 했지 자기가 누굴 미워할 성질은 아니었다. 게다가 친하지도 않은 아이의 시선까지 신경 써줄 정도로 마더테라사도 아니었고. 그랬던 유연이 기억나는 친구 딱 세 명을 뽑자면 무조건 들어가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음에도, 기억나는 이유가 있다.
이 아이는 남들과 굳이 다른 건 없었다. 남들과 비슷한 생김새에, 여느 여학생과 같은 말투를 구사했다. 똑같은 급식을 먹고, 똑같이 하교하고, 똑같이 공부했다. 근데 딱 한 가지 달랐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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