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9. 01.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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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냉장고, 에어컨 등은 '완제품'이다.
에어컨은 더운 공간을 시원하게 해주는 존재이다.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에어컨은 '존재가치'가 사라진다. 하지만 인간은 완성된 존재로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완성을 향한 역동적인 삶을 형성해나갈 자유가 있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은 자신의 본질이 아닌 일시적으로 부여 받은 역할일 뿐이다.
'기분'은 키나 몸무게와 같이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양철학에서 무시당해왔지만, 실존주의는 이런 실존적인 것들을 직시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예술의 형식을 자주 빌렸다. (알베르 카뮈, 프란츠 카프카, 장 폴 사르트르 등)
<유신론적 실존주의> -신 또는 본질로부터 내가 존재한다.
[키에르케고르] - 국가화되어 개인들을 외면하는 기독교를 비판하며, 소외된 개인을 직접 만나는 신으로부터 자신의 존재 근거를 마련해야한다.
1. 심미적 실존 : 쾌락만을 쫓는 상태. 매우 불안
-> 키에르케고르의 아버지는 당시 법을 어기고 하녀와 결혼을 해 7남매를 낳음. 그래서 자식들이 예수의 나이인 33세 이전까지 밖에 못살 것이라고 생각함. 실제로 5남매가 33세 이전에 사망하였고, 키에르케고르 또한 죽음의 공포감에 빠짐.
그래서 항상 향락만 추구.
2. 윤리적 실존: 윤리적으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의 윤리적 한계를 점점 깨달으며 불안에 빠지는 단계.
-> 키에르케고르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방탕한 삶을 살지 않기로 마음 먹음. 그런데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혼을 약속했던 여인과 파혼하고 혼자 살기로 함.
3. 종교적 실존: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절대적 신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삶
-> 키에르케고르는 형식만 차리고 변질되어버린 덴마크 교회를 비판하다 사망.
인간은 육체로서 유한한 삶을 살지만 영혼으로서 이루지 못할 무한한 꿈을 꾸기 때문에 '절망'에 빠짐.
<죽음에 이르는 병>
1. 무지의 절망- 자신이 절망에 빠졌는지 모른 채 외부의 아름다운 것들을 계속해서 탐닉함.
2. 취약한 절망 - 자신이 절망에 빠졌는지 알지만, 그것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3. 반항의 절망 - 자신이 절망에 빠졌는지 알고 벗어나기 위해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노력하지만 결국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하며 절망.
-> 인간은 절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버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바로 '신'을 믿는 것. (절망 <- > 신앙 )
<진리>
- 보편적 진리: ex) 대다수가 옳다고 믿는 것. (규율, 관습 등) ( 참이기에 믿음이 생김)
- 주관적 진리: ex) 신이 존재한다 ( 믿음이 있기에 참임) <- 진짜 진리
인간은 '자유'가 있기 때문에 불안함을 느끼지만 '결단'(믿음의 도약) 을 내릴 수 있고, 결단을 내림으로써 '신'을 믿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신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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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적 실존주의> -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징]
-인간의 역할을 강조
- 비관적인 해석으로 흐른다.
[프리드리히 니체]
<힘에의 의지> (will to power)
ex) 아기가 넘어져도 계속 일어서려고 하는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닌 자신의 진정한 의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어제의 자신과의 경쟁이 중요.
<영원회귀> - 인생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ex) 7시에 기상해서 출근했다가 저녁에 돌아와서 잠자는 삶을 무한히 반복한다고 생각한다면? -> 뭔가 답답함을 느낌. -> 현재의 삶을 즐기자!
<주인 도덕 vs 노예 도덕>
주인도덕 - 선악의 기준 = 나의 성장
노예 도덕 - 강함 = 악 / 약함 = 선, 현재 자신의 삶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다른 이들의 삶을 폄하함.
<아모르파티 (Amor Fati)> = 운명애
-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실패를 성공의 자양분으로 삼는 자세. 다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체념하는 태도 (퇴폐) 는 운명애가 아님.
<자기 극복> (Self - Overcoming)
- 인간은 원래의 나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매일 조금씩 나아지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하는 사람을 위버맨쉬라고 부른다.
<가치의 재평가> (Revaluation of All Values)
모든 가치는 인간이 형성한 것.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사회가 정한 가치인지 자신이 원하는 가치인지 인지할 필요가 있다.
<재평가하는 방법>
1. 의심하기 - 이 가치가 정말 자신이 원하는 가치인가 의심해보기.
2. 탐구하기 - 이 가치가 사회가 형성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누가 이런 가치를 형성했는지 생각하기.
3. 결정하기 -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의식적으로 결정하기.
<창조적 파괴>
- 모든 인간이 순차적으로 밟아가는 3단계
1. 낙타 (타인이 나를 정함)
- 모든 것을 순종한 채 따른다.
2. 사자 (내가 나를 정함)
- 기존의 것에 반항하며 파괴함.
3. 어린아이 (내가 나를 만듦.)
- 자신이 새로운 기준을 만듦.
<신은 죽었다>
니체가 주장한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는 말은 정말 신이 없다는 것이 아닌, 신의 절대적 가치 체계가 사라짐을 뜻함. 현대의 사람들은 신을 맹목적으로 믿기보단, 돈, 권력, 팔로워 수 등을 우상화시킴. 이런 기존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을 니힐리즘이라고 한다.
니체는 모든 것이 의미 없다고 보는 수동적 니힐리즘이 아닌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능동적 니힐리즘을 주장했다.
<근원적 일자 - 아폴론형 vs 디오니소스형>
니체는 예술창작을 위한 근본 충동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아폴론형'과 '디오니소스형'이다. 이 두 충동은 서로 투쟁하고 화해하면서 예술의 발전을 이룬다. 예술 장르의 특성에 비추어 보면, 아폴론형은 질서있고, 이성적인 조형예술에, 디오니소스형은 열정적이고, 무형식적인 음악에 특징적이다.
아폴론 형은 인간이 고통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 세계이다.
디오니소스 형은 삶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디오니소스 형에만 심취하면 자신을 망각하고, 혼돈에 빠져들 수 있는데, '비극'은 디오니소스적 혼돈을 아폴론적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이 삶의 고통을 미화시키지 않으면서도 견딜 수 있게 하는 예술 형식이 된다.
음악은 세상에 보여지는 현상을 모사하는 다른 예술과는 달리 본 모습을 직접적으로 모사하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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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폴 사르트르]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인간은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냥 던져진 존재자이다.
개개인적 선택 = 사회적 선택
주유에 있어 선택은 책임으로 인한 불안.
<존재와 무> (1943)
'존재론'
의식 그자체 (대자 / 인간) -------- 현상학 ---------- 의식의 대상 (즉자 / 돌)
대자: 무언갈 계속 의식하는 존재. 즉자: 그 자체로 있는 존재
대자와 즉자의 공통점: 모두가 우연하게 존재하게 됨. ( 무신론)
인간은 지향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지향성이란 의식이 가만히 있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 지향하는 것.)
*현상학 - 선이해를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것. -> 순수의식 (무)
의식의 이중 구조 : 1) 자기를 의식 (전반성적 의식)
2) 외부 대상을 의식 (반성적 의식)
반성적 의식: 세상에는 수 많은 대상들이 무분별하게 있는데 특정 대상을 정립적으로 파악
ex) 금발 여성을 포착하면 다시 그 의식이 되돌아와서 판단.
그리고 반성적 의식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땐 상대방이 즉자적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왜곡)
전반성적 의식: ex) 대화를 할 때 "내가 지금 대화를 하고 있어." 라고 반성하지 않아도, 이미 나는 내가 던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스러운 의식을 가지게되고 자유로운 것.
<사르트르의 '순수의식'>
인간은 순수의식 (무)를 가졌기 때문에 본질이 없어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인간의 자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 자신의 본질을 창조해가야한다. 물론 자신의 본질을 포착하는 순간 즉자가 되어버림.
<이중성>
우연적으로 주어진 상황 (국적, 성별 등) < -- > 이 삶 속에서 내가 선택하는 것
만약 우연히 주어진 상황을 자신의 본질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기만' 이다.
ex) 아나운서가 자신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가 해고를 당한다면 그녀의 착각이 드러난다.
아나운서는 자신이 아나운서 이외에 다른 선택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만족함.
<타자>
자기 자신에겐 대자적이지만, 타자의 시선에는 즉자로 보이는 존재를 타자라고 한다.
"타자는 지옥이다."
타자의 시선으로 인해 나는 즉자가 되어버린다. 즉자가 되어버린 '나'는 다시 주체가 되어 상대를 즉자로 만들기 위해 시선을 보낸다. (시선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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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성적인 성질은 여성의 본질이 아닌, 사회로 인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인간은 자유로운 주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조건 속에 얽혀있는 양면적 존재이다. (애매성)
그렇게 때문에 남성은 보편적 주체, 여성은 타자라고 보며 성별 권력 구조를 비판했다.
즉 여성 억압은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사회문화적 구성의 산물이라는 것.
진정한 자유는 사회가 부여하는 여성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책임 있는 주체로 살아가야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존재론을 해체해야 된다고 말했다.
<전통 존재론>
물방울 소리, 문 닫히는 소리, 우는 소리의 공통점은 '소리'이다. 재산이 300억인 사람 빚이 10억인 사람의 공통점은 '사람'이다.
이렇듯 개별적 성질들을 부수적인 것으로 치부함과 동시에, 공통 성질만 주목하면서 '보편'을 추구하는 것이 전통 존재론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개별적인 사물처럼 다룸.)
<하이데거 존재론>
하지만 하이데거는 '소리'라는 보편 개념보다 어떤 소리인지에 주목하면서, 즉 보편화된 것들에 숨겨져 있는 개별적 특성들에 주목하였다.
<전재자 & 용재자>
전재자 - 사물 그 자체
용재자 - 사물의 도구적 성격
예를들어 빈센트 반 고흐의 <끈이 달린 오래된 구두> 라는 작품을 보면, 전재자의 관점에선 그저 공장에서 생산된 수 많은 구두 중 한 켤레로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용재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 구두는 늙은 농부가 오랫동안 신어온 특별한 구두 한 켤레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존재>
하이데거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재자'라고 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묻는 존재는 인간 밖에 없음으로 인간은 다른 존재와 차별화된 '현존재'라고 불렀다.
현존재의 '현'은 드러낸다는 뜻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존재가 현존재라는 것.
중요한 것은 전재자와 용재자는 정해진 것이 아닌, 현존재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같은 존재가 어떨때는 전재자가 될 수 있고, 어떨때는 용재자가 될 수 있는 것.
예를들어 김춘수 시인의 <꽃>을 볼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존재>
지금까지의 전통 존재론은 '존재자' = 이미 나타나 있는 것을 탐구했다. 인간의 존재를 탐구했지만, 인간이 왜 존재하고 언제 존재하는지 탐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존재'에 대해서 탐구했다. 왜 인간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탐구하였다.
<실존론적 존재론>
기존 존재론에선 인간의 존재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연구를 해왔지만, 사실 인간은 왜 태어났는지, 왜 죽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데거는 여기 살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결국 현존재의 본질은 실존에 있는 것.
<가짜 개성 vs 진짜 개성>
인간은 자신의 내면 목소리보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의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익명성에 묻혀 살면 편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이런 사람을 '세상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비본래적 존재 양태'라고 한다. 즉 가짜 개성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죽음을 직면한다면, 인간은 '고유한 가능성'을 실현한다. 즉 자신의 진짜 개성을 찾는다. 인간은 죽음에 대한 불안을 느끼지만, 역설적으로 그 불안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자신을 찾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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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야스퍼스]
인간은 누구나 특정 상황 속에 존재하고 있다. 상황은 일반 상황과 극한 상황으로 나뉜다.
<극한 상황> -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죽음
-고통
-투쟁 (경쟁)
-죄책 (나의 의도와 무관하게 나의 행위에 대해 책임이 발생하는 상황)
<현존재와 실존재>
대중이라는 집단은 어느 누구도 실제로 가지고 있지 않은 의견을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인 것 처럼 만드는 환영
현존재 =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 종속 당한 존재
ex) 나치당에 휩쓸린 지식인들, 집단 따돌림에 합류하는 사람
-> 현존재는 죽음이 현재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삶에만 집중함. 그러다 죽음이 찾아오면 굉장히 당황.
실존=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상황으로 파악하는 존재
-> 한계 상황에 대한 태도에 따라 실존이 될 수 있다. 죽음이 자신에게 오고 있음을, 현재의 삶과 떨어져 있지 않음을 인정하고 삶을 소중하게 살아가는 것.
= 주어진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힘이 바로 실존의 힘
다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없기 때문에 실존에 이른 것을 확인하기 위해선 논리적 분석이 아닌 실천을 통해 알 수 있다.
<포괄자>
한 인간의 전부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현존재는 한 사람의 단면적인 부분만 보고 그를 파악한다. 하지만 포괄자는 한 인간의 모든 면을 보는 것을 뜻하고, 포괄자를 의식하는 사람은 인간을 단면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함.
<초월>
인간은 인식하지 못하는 초월의 영역에서 보내는 암호를 해독하며 살아간다. (죽음, 고통 등) 다만 인간은 초월의 영역을 논라적으로 해명할 수 없다.
'실존'은 이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지만, '현존재'는 해독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 채 이 상황들에 종속됨. 즉 실존은 초월의 상황들에서 벗어날 순 없지만, 그것의 의미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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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를 보면, 시지프는 제우스의 형벌로 인해 거대한 돌을 산 위로 올려야 한다. 하지만 돌을 꼭대기까지 올려도 다시 굴러 떨어지게 된다.
시지프는 이런 무의미한 행위에 3가지 반응을 할 수 있다.
1. 무의미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자살
2. 돌을 굴리는 행위는 자신이 근력을 키우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반복
3. 의미가 없는 것을 직시하되, 매일매일을 열심히 굴리기.
카뮈는 3번의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옳고, 그것을 반항하는 삶이라고 말했다.
의미없는 삶을 직시하고, 그 의미없는 삶을 열심히 살아갈 때 역설적으로 의미가 생긴다.
<이방인>
초반: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 레몽의 편지를 써주는 일, 심지어 살인을 저지르기 까지
삶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 상태이다. 이것을 부조리를 인식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카뮈의 입장에서 부조리를 인식한 후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이상적이기 때문에 뫼르소는 정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마치 현대인들이 학교를 왜 다니고, 회사를 왜 다니는지 이유를 찾지 않은 채 기계처럼 생활하는 삶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변화: 뫼르소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죽음을 직시하게 된다. 드디어 삶의 가장 거대한 부조리를 직시하자 역설적이게 삶에 의미를 찾게 된다. 변화전의 뫼르소였다면 자신의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부조리를 직시하고 그것을 긍정하는 쪽으로 나아가며 정신적인 발전을 이루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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