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7. 23.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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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아 황녀님.”
그가 다시 내 앞에 섰다.
연회장의 조명이, 살짝 기울어진 머리 위로 조용히 내려앉았다.
“저랑 춤춰주실 수 있나요?”
“…지금요?”
나는 얼떨결에 되물었다.
“아니면 조금 이따가? 아무 때나 좋아요.”
그가 웃었다.
어떤 억지도, 계산도 없는 얼굴이었다.
“그 전에, 이름부터 말씀드릴게요.”
그는 정중하게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고개를 숙였다.
“빙국 황태자, 시르 라우렌트 엘 브리제. 15세. 무례를 드렸다면 사과드립니다.”
“…왜, 그걸 저한테…?”
“엘레노아 황녀께 정식으로 춤을 청하려면, 이름 정도는 알려드려야 하잖아요.”
나는 잠깐 말이 막혔다.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정식으로 대했던 게… 처음이었다.
“엘레노아예요. 그냥, 엘레노아.”
작게 대답하자, 그가 다시 웃었다.
“엘레노아 황녀. 춤춰주실래요?”
시르가 손을 내밀었다.
모두의 시선이 점점 이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황제가 보였다.
멀리, 단상 끝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표정은… 아무것도 없는데, 차가웠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괜찮아요?”
시르가 조용히 물었다.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놀라울 만큼 따뜻했다.
연회의 한가운데, 모든 시선이 우리를 향해 있었다.
음악이 바뀌고, 우리는 천천히 발을 맞췄다.
“아까… 저를 보고 있었다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보였어요.”
시르가 대답했다.
“어떻게요? 다들 저 못 본 척하는데…”
“그래서 더 보였어요.”
그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말문이 막혔다.
“저도 비슷하거든요.”
그가 말을 이었다.
“투명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나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시르의 눈엔 거짓이 없었다.
“당신은… 겁 안 나요?”
나는 작게 물었다.
“겁나요. 근데, 같이 있으면 덜 날 것 같아요.”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어디서도 들은 적 없는 말이었다.
춤이 끝났을 때, 연회장은 조용했다.
누구도 크게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뭔가를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시르가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네고 물러섰다.
그 순간, 한 시종이 나를 찾았다.
“황제 폐하께서 황녀님을 찾으십니다.”
숨이 턱 막혔다.
피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불필요한 장식도 없이, 벽에는 검만 걸려 있었다.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무슨 일이냐.”
그의 목소리는 짧고 낮았다.
“…황태자와 춤을 췄습니다. 폐하.”
“왜?”
한 마디.
짧은 그 한 마디에, 식은땀이 났다.
“그가 청했어요. 저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어요.”
“네 존재가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건 모른단 말이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억해라. 엘레노아.”
가까이 다가왔다.
그 눈빛은, 숨을 틀어막을 만큼 차가웠다.
“너는 내 딸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실수일 뿐이다.”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 아이와 더 가까워진다면, 넌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 말은 경고였다.
그리고, 협박이었다.
나는 손을 꽉 쥔 채,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 아이를… 더 이상 보면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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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7. 23. 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