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7. 23.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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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차다.
궁 안도 다르지 않았다.
황궁이라면 응당 따뜻해야 할 터였지만, 이곳에는 이상할 만큼의 침묵과 냉기가 감돌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늘 밖에 있었다.
식탁 끝에서도, 연회장 입구에서도, 어중간한 자리에만 존재했다.
"황녀께서도 참석하신다 들었습니다."
시녀의 말에 거울 속 내 얼굴이 희미하게 떨렸다.
"초대받은 건 아니야. 그냥… 조용히 있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거지."
나는 조심스럽게 눈가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화려한 드레스, 단정한 화장.
그 누구보다 제국의 피를 짙게 물려받은 얼굴.
하지만 그 얼굴을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연회가 열리는 궁의 동편 전당은 이미 수십 개의 샹들리에와 촛불로 물들어 있었다.
하프 소리가 잔잔히 흘러나오고, 붉은 융단 위로는 귀족들의 웃음과 속삭임이 넘실거렸다.
“폐하께서 곧 입장하십니다!”
우렁찬 외침과 함께 전당의 공기가 바뀌었다.
순식간에 모든 시선이 커다란 문을 향한다.
황제, 칼릭스 루디온 로즈번.
그는 단단히 채운 금빛 제복을 입고, 느리게 입장했다.
나는 문 근처, 눈에 띄지 않는 기둥 뒤에 서서 그를 바라봤다.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가 내게 아버지였던 적은 없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따뜻하게 부른 적이 없었다.
내 이름조차, 그의 입에서 나올 때면 마치 저주처럼 들렸다.
“황녀 엘레노아, 오늘은 무례를 범하지 말도록 해라.”
그 말이 떠올랐다. 아침, 나를 곁눈질도 하지 않고 지나치며 던진 한 마디.
그건 경고였고, 동시에 선언이었다.
‘너는 오늘도 투명한 존재여야 한다.’
나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시선들이 달라졌다.
"빙국 황태자가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속삭임.
빙국.
얼음으로 둘러싸인 북방의 강국.
제국과는 늘 미묘한 긴장 관계에 놓여 있던 나라.
이 연회에 그들이 오는 건 예상 밖이었다.
그 중에서도 황태자라면 이건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다. 어떤 의도가 있단 뜻이다.
나도 모르게 기둥 틈 사이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멀리, 아직 계단을 오르지 않은 자리.
수많은 사람들 틈 사이에서, 단 한 사람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차가운 백색의 머리카락.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아무도 나를 보지 않을 때조차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눈.
빙국 황태자.
나는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연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어떤 예감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오늘 밤, 무언가가 바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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