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5. 31.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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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는 여덟 살이었다. 바닷가 마을의 봄은 고요했고, 바람은 따뜻했다.그러나 봄은오래가지 않았다. 어머니는어느 날 갑자기 앓아눕더니 며칠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어머니는 유언으로 이렇게 말하셨다."해수야,하늘이 무너져도 솓아날 곳이 있단다."어린해수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어머니를 보냈다.의사는침묵했고,마을 어른들은 눈을 피하며 중얼거렸다."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딱 그 꼴이구먼..."어린 해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세상엔 예고 없는 이별이 있다는 걸, 너무 일찍 배워버렸다.그날 이후,어머니에 대한그리움은 커져가고식탁위에는 어머니의 빈 숟가락 자리가 그림자처럼 남았다.1953년, 여름, 정전협정이 코앞에 다가온 어느 오후.아버지는 밭일하러 나간다며 집을 나섰고, 엎친데덮친 격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금방 갔다올게. 저녁엔 생선찜 해 먹자.”해수가 기억하는 마지막 말이었다.그날 이후, 사람들의 말은 갈라졌다."끌려갔다”는 사람도 있었고, “월북했다"는 이도 있었다.하지만 해수는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싶지않았다.… 난 아버지의 말을 아직도 믿어요."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지만, 해수의 슬픔은 굳어지지 않았다.해수는 매일 밤, 마당에 나와 별을 세며 속삭였다."아버지,… 오늘도 거기 계신 거죠?”그해부터 해수의 마음속에 작은 언덕이 생겼다.그위엔늘,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가 서 있었다.해수는 어른이 되었고, 노인이 되었고, 결국 전설처럼 늙어버렸다.올해로 119세.병원 침대에 누운 그의 심장은 여전히 북쪽을 향해 뛰었다.그러던 어느 날, TV 속 뉴스가 병실을 가르며 울렸다."남과 북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었음을… 공식 선언했습니다!”순간 간호사들이 울었고, 병실의 노인들이 침묵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해수는 말없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중얼거렸다."아버지… 우리가 하나가 되었어요. 세상은 변했네요.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백 년이 넘게 걸렸네요…”눈물이 줄줄 흘렀다.하지만 그 눈물은 처음으로, 따뜻했다.5월 27일, 통일 한 달 뒤.해수는 특별 수송버스에 올라 북쪽으로 향했다.길가에 핀 들꽃 하나에도 눈을 떼지 못하며 그는 말했다."이 공기… 아버지가 마셨던 그공기 그대로야"해수는107년동안그곳을 그리워했다.한편으론 슬펐고,한편으론 고향에 다시 와서 기뻤다.하지만 그 107년 동안, 해수는 한번도 고향에 오지 못했다.겉으로는 3.8선 때문에 못 간다 했지만 사실은 겁이나서 그랬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봐, 죄책감이 들어서,해수는 작게 덧붙였다."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 했지…
나는 이 한 걸음을 107년 동안 걸었어.”
버스가 멈춘 곳은, 115년 전 살던 마을.
잡초가 무성한 돌담과 쓰러진 기둥 아래,
그 시절의 시간이 숨을 죽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해수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집 뒤뜰로 향했다.그곳에, 무릎 높이의 작은 무덤 하나가 있었다.김한수.그토록 보고 싶었던 이름.해수는 묘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손으로 그 글자를 어루만지며, 아이처럼 울었다."아버지… 나 왔어요.핏줄은 물보다 진하다고 했죠? 그 말… 맞았어요. 전 여태 기다렸거든요. 그로부터 1년 뒤, 해수는 세상을 떠났다.죽기 전 그는 간호사에게 말했다."내 삶은 길었지만, 그리 길지 않았소.
내가 기다린 건… 단 한 사람이었으니까.”
그의 책상 위엔 이런 문장이 적힌 쪽지 한 장이 남겨져 있었다."통일은 정치가 이룬 게 아닙니다.한 아이의 기다림, 한 사람의 사랑이 만든 겁니다.”그날, 봄비가 내렸다.
마치 한사람이 남긴 긴 이야기의 마지막같이,해수의 119년,기나긴 여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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