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5. 10.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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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흘렀다.
에리엔은 성 안의 균열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몰래 접촉한 대신관, 회의에서 침묵만 하던 노대신, 언젠가 황후에게 불명예를 당했던 귀족 가문의 수장까지. 그녀는 차근차근 말을 두었다.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하나씩 무너뜨리면 됩니다. 그분처럼, 눈앞의 돌부터."
그 ‘그분’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라비안은 알 수 있었다.
황후.
그녀는 단순히 에리엔을 제거하려 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그녀를 무력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어 왔다.
하지만 지금의 에리엔은—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라비안은 문틈 사이로 그녀를 바라보다 말했다.
"복수는… 복수만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곁에 있어달라고 한 겁니다."
에리엔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저를 잡아주면… 전 절대로 무너지지 않아요."
라비안은 대답 대신, 조용히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 위 망토를 곧게 펴주었다.
그 짧은 접촉에,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그러나 곧,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긴장감을 깨뜨렸다.
“황후마마께서… 황녀님을 연회에 초대하셨습니다.”
에리엔의 눈빛이 번뜩였다.
연회?
지금 이 시국에?
"이상하네요. 사람들 앞에 저를 드러내다니."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라비안은 즉시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가야죠.”
에리엔은 단호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황후가 제게 손을 대는 순간, 그건 그녀의 실책이 되니까요."
연회는 화려했다.
황후는 여느 때처럼 우아한 미소를 띠며 에리엔을 맞이했다.
“황녀님. 건강해 보이는군요.”
“덕분입니다, 황후마마. 상냥히 챙겨 주셔서요.”
주위 귀족들이 가볍게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지만, 누구 하나 이 상황의 긴장을 몰랐던 이는 없었다.
에리엔은 계획대로, 대신들과 자연스레 대화를 섞으며 분위기를 자신 쪽으로 이끌어갔다.
그때—
황후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황녀님의 복귀를 축하하며 작은 선물을 준비했답니다. 자, 들어오게.”
궁정악단 옆의 문이 열리고, 하인 둘이 수레를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위에—
“...!”
에리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수레 위엔, 피범벅이 된 옷을 입은 한 병사가 실려 있었다.
“라비안 경의 부하지요?”
황후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황녀님의 계략을 저지하려다 붙잡혔습니다. 저 불쌍한 자는 자백했답니다.”
황후는 찻잔을 든 채 에리엔을 바라봤다.
“누가 누구를 함정에 빠뜨리는 건지…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황녀님?”
에리엔의 손이 굳어졌다. 그녀는 애써 표정을 유지하며 물었다.
“무슨 자백을 받으셨나요?”
“황녀님께서 불법으로 대신들을 회유하고 있다는 증언. 황태자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도 곧 도착하겠지요.”
귀족들 사이에 서늘한 바람이 돌았다.누군가 작게 속삭였다. "정말인가…?"
에리엔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건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황후는 오히려, 자신이 던진 수의 반격을 정확히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과연 누가 더 높은 수를 두었는지… 곧 알게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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