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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약속 38화

애나🍬

2025. 05. 08. 목요일

조회수 46

황후궁의 밤은 유난히 고요했다. 시녀들도 병사들도, 아무도 함부로 숨을 쉬지 못했다.
그녀가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동안, 무언가 곧 무너질 것 같은 긴장감이 퍼져 있었다.
그때—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시녀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황녀님께서 오셨습니다.”
황후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은 채 말했다.
“들여보내라.”
문이 열리자, 에리엔이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하얀 실크 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스치며 고요하게 움직였다.
병사들이 아무 말 없이 문을 닫고 나가자, 방 안엔 단둘만이 남았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지?”
황후는 건조하게 물었다.
“죽다 살아났으면, 조용히 회복이나 하지.”
에리엔은 대답 대신 방 안을 둘러보았다.
비어 있는 좌우, 꺼진 촛불들, 그리고 황후의 손에 들려 있던 찻잔.
“혼자 계시네요.”
에리엔이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시녀들도 가까이 오기 싫어하는 모양입니다.”
황후의 손이 찻잔을 덜컥 내려놨다.
“그래서 협박이라도 하러 온 것이냐?”
“협박이요?” 에리엔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황후마마께서는 협박을 기억 못 하시나 봅니다. 자식에게 독을 먹인 건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죠?”
황후는 말없이 에리엔을 바라보았다. 감정이라곤 담기지 않은, 차갑고 허망한 시선이었다.
“기억하거라, 에리엔.”
황후가 낮게 속삭였다.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지.”
에리엔은 말없이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 말,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그녀는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러니 더는 저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황후의 눈에 살기가 스쳤지만, 에리엔은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살아 돌아온 건 기적입니다. 하지만, 그 기적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경고입니다.”
“경고?”
“예. 저를 죽이려 했던 사람들, 다시는 살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는 경고요.”
황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까짓 것이—!”
“네까짓 것?”
에리엔은 미소를 지으며 되받았다.
“맞습니다. 황후마마 눈엔 저는 언제나 ‘쓸모없는’ 존재였겠죠.
하지만 기억하세요. 바로 그 ‘쓸모없던 것’이 당신을 무너뜨릴 겁니다.”
황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에리엔은 등을 돌려 문을 향해 걸어가며 덧붙였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황후마마께서 저를 죽이려 했던 그날… 저도 하나 깨달았습니다.
당신을 살려둘 이유는 없다는 것을요.”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황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 안에는 여전히 찬 공기만이 가득했다.
그날 밤, 에리엔은 라비안이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를 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황녀님, 무사히 다녀오셨습니까.”
“예. 이제는… 다시는 지지 않을 겁니다.”
라비안은 그녀의 눈빛을 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 결심,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에리엔은 살짝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계속… 제 곁에 있어 주실 건가요?”
“언제까지든.”
그 짧은 말 한 마디가, 마치 온 방 안을 따뜻하게 감싸는 듯했다.
하지만, 둘은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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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어어어엉
레나🐐(하리니)

2025. 05. 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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