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공개

언제까지나 기억이야 (4)

초먼지🍬

2025. 05. 06. 화요일

조회수 21

세레나는 무거운 마음을 달래려 책이라도 읽어볼 생각으로 서재로 향했다. 언제나 조용하고 정리된 공간. 그녀가 유일하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 중 하나였다.
탁,
손에 익숙한 두꺼운 고전을 꺼내 들려던 순간—
“거기.”
낯익은 목소리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 책장 사이, 긴 그림자처럼 선 카일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일…?”
그는 검은색 마법서 하나를 손에 든 채, 천천히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 눈빛은 날카롭지 않았지만, 어딘가 다급해 보였다.
“기억났어?”
“…….”
“조금이라도? 어릴 적, 너… 죽어가던 밤. 기억 안 나?”
세레나는 책을 꼭 쥐고 고개를 젓는다.
“그런 기억, 없어.”
카일은 한참을 그녀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그러다 낮고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생명을 거는 마법은 간단한 일이 아니야. 내 몸의 절반 이상을 태워가며, 너를 붙잡았어. 그 밤을, 너는 어떻게 하나도 기억하지 않을 수 있지?”
그의 말은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슬픔이 묻어 있었다. 그건 어릴 적부터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무게였다.
세레나는 한걸음 물러섰다. 마법이며 생명이며, 그 모든 말들이 숨을 막히게 했다.
“그만해. 그런 말… 부담스러워.”
“하지만 네가 기억하지 않으면, 난 계속 모르는 사람으로 남겠지.”
“…….”
“그게 더 고통스러워.”
세레나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벗어나듯 서재를 나왔다.
침실로 돌아온 그녀는 무겁게 문을 닫았다.
침대에 앉으려다 말고,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죽어가던 밤.’
‘내 몸의 절반 이상을 태워가며, 너를 붙잡았어.’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불쑥 떠올랐다.
어둡고 습한 공간.
눈앞이 모두 흑색으로 물들어가던 어느 순간.
차가운 손이 자신의 이마에 닿았고,
낮고 떨리는 목소리가 속삭였다.
“제발, 살아줘. 내가 널 여기서 꺼낼 거야.”
하얀 불빛이 어스름하게 감싸던 그 아이의 얼굴.
눈이… 참 차가우면서도 따뜻했다.
“……그 아이.”
세레나는 천천히 중얼였다.
숨이 걸렸다.
가슴이 뛰었다.
“설마… 그 아이가, 카일…?”
**
서재에서의 조용한 긴장과, 침실에서의 혼란.
그녀의 기억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틈을 내고 있었다.

#1 자유 주제

카카오링크 보내기 버튼

10

✏️ '좋아요'누르고 연필 1개 모으기 🔥

오오오옹 뭐야 기억이 난건가???
smile

2025. 05. 06. 18:30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