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27.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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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소린에게 사과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학교에 간 나는, 주머니 속에 꼭 쥔 편지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땀에 젖어 축축해진 종이는 내 불안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교실 문을 열자, 소린과 리암이 깔깔 웃으며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소린은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돌려 리암과 웃음을 이어갔다.
나는 멈춰 서서 그 장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쥐고 있던 편지를 힘껏 구겨버렸다. 쿡 하고 터진 소리에 편지가 손아귀에서 부서지듯 찢겼다.
나는 구겨진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사과해야 해?”
평소의 나였다면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을 말들이 무심코 흘러나왔다.
순간, 스스로 놀라 입을 막았다. 목 안쪽이 싸늘해졌다. 누가 나를 조종하는 것 같았다.
수업이 시작되자, 선생님은 짜증난 얼굴로 말했다.
"수학 쪽지 시험 볼 거야. 준비됐지?"
수학. 생각만 해도 질색인 과목.
하지만 매번 소린이 옆에서 도와줬기에, 몸이 기억하듯 습관적으로 소린 쪽을 바라봤다.
소린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빛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은, 내 옆, 리암이 앉은 자리에 멈춰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리암도 소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의 눈빛은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혼자가 된 거였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모든 불행이 그 낡은 일기장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페이지를 찢기 시작했다. 손톱이 부러질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찢었지만, 이상하게도 종이는 점점 더 질겨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찢히는 게 아니라, 종이가 살아 움직이며 저항하는 것 같았다.
지쳐서 포기한 순간, 일기장은 조용히 다시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새로 적힌 글귀가 있었다.
'일기장을 찢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하다. 이 일기장을 읽은 순간, 글과 내 삶이 연결되었다는 것을.'
-성공-
나는 얼어붙었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렀다.
'글과 삶이 연결됐다'는 건, 무슨 뜻일까?
처음엔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믿으려 했다. 꿈일 거라고, 악몽일 거라고 스스로를 속이려 했다.
하지만 며칠 뒤, 일기장에 쓰여 있던 내용은 단순한 장난을 넘어섰다.
'오늘, 나는 3층 창문에서 떨어졌다. 떨어지는 나를 바라보는 리암과 소린을 포함한 사람들은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웃음을 지었다.'
나는 일기장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닫아야 한다. 무조건 닫아야 한다.
하지만 창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덜컥 소리가 나며 창문이 더 크게 열렸고,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가 강하게 나를 밀었다.
나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허공으로 내던져졌다.
떨어지면서 마지막으로 본 건 창틀 너머로 보이는 소린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무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동자는 싸늘했고, 입꼬리는 아주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아, 소린이었구나.
나를 민 사람은 소린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 일기장은, 누군가를 끝없이 대체하며 살아가는 무언가의 통로라는 것을.
이제, 나는 매일 일기를 쓴다.
나의 하루가 아닌,
다음 희생자의 하루를.
그리고 책상 위, 낡은 헌책방 스티커가 붙어 있는 그 일기장은
오늘도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기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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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27. 19:29